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첫 번째 출근일인 2일 서울의 한 대기업 직원들이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기업은 오후 5시부터
30분간 ‘퇴근 카운트다운’을 실시한 뒤 모든 컴퓨터의 전원을 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대기업 계열사 직원 A 씨는 2일 퇴근하자마자 회사 근처 영어학원으로 향했다. 한 달 넘게 눈치만 보다 며칠 전 등록한 학원이었다. A 씨 회사는 올 4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시범 실시했지만 직원들은 정식 시행 직전까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A 씨는 “6월 말까지도 할 일을 쌓아 놓고 퇴근하는 게 눈치가 보이고 스트레스였는데 막상 시작하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영어학원이 끝나면 취미생활을 위한 동호회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제 시행 후 첫 출근일인 2일 상당수 직장인의 얼굴에서는 큰 혼란을 느낄 수 없었다. 대기업이 많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일대와 강남구 일대의 퇴근길 분위기도 평소와 조금 달라 보였다. 대기업의 경우 이미 유연근무제나 자율출퇴근제 등 근로시간 단축에 단단히 대비한 효과 덕분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사 직원 임모 씨(34)는 “여자친구와 함께 등록한 헬스클럽에 가는 첫날이다. 야근 핑계 없이 꾸준히 출석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부터 새로운 현장이 시작돼 오후 5시 퇴근이 지켜질지 걱정했는데 앞으로 계속 무리하지 않고 정시 퇴근이 가능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야근 없는 직장과 ‘칼퇴’(정시 퇴근)가 마냥 반갑지 않은 직장인도 많았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이모 씨(27·여)는 이날 칼퇴에 성공했다. 하지만 퇴근길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 씨는 보통 일주일에 2, 3차례 야근을 했다. 이 씨는 “회사 지침에 따라 오후 6시에 퇴근했지만 새로운 상품 출시를 앞두고 처리할 업무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업무시간만 줄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업무 중 휴게 시간을 둘러싼 혼란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대기업 계열사의 B 부장은 “담배 피우러 가는 직원들이 내 눈치를 보기에 얼른 다녀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B 부장은 보통 오후 3, 4시가 되면 직원 1, 2명에게 부서 내 전 직원이 마실 커피를 사오게 했다. 하지만 이날은 건너뛰었다. 그는 “아무래도 근무시간 중에 시키는 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휴게 시간에 흡연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행위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서 이뤄졌으면 근로시간에 포함되지만 명확히 ‘개인적 용무’ 차원이었다면 근로시간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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