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와 그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수행비서 김지은 씨(33)가 2일 같은 법정에 앉았다. 김 씨가 3월 5일 방송에 출연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를 한 지 119일 만이다.
피고인석의 안 전 지사와 방청석 맨 앞줄 김 씨 간 거리는 4m. 하지만 두 사람은 재판이 진행되는 2시간 내내 한 차례도 상대편을 쳐다보지 않았다. 김 씨는 정면의 재판부를 응시하다 고개를 숙여 재판 내용을 메모했고, 안 전 지사는 눈을 감거나 책상을 내려다봤다.
이날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 심리로 열린 안 전 지사의 첫 공판에서 검찰은 그가 저질렀다는 성폭행 범죄의 구체적인 정황을 설명하면서 그를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에 비유했다. 또 김 씨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안 전 지사를 비판하며 ‘권력형 성범죄자가 보이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즘적 태도’라고 했다.
안 전 지사는 2017년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김 씨를 4차례 성폭행하고 6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안 전 지사는 검사가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동안 착잡한 듯 안경을 벗고 두 눈을 감았다.
검찰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맥주나 담배 심부름 명목으로 김 씨를 부른 뒤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를 받고 있다. 러시아, 스위스 출장지와 서울에서 김 씨를 호텔방으로 불러 “나를 안게” 등의 말을 하며 성관계를 요구했고, 김 씨는 응하지 않거나 여러 번 거절의사를 나타냈지만 안 전 지사는 강제로 김 씨의 몸을 만지며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는 KTX 내부나 관용 차량 등에서도 김 씨의 동의 없이 입을 맞추거나 은밀한 신체 부위를 만진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수행비서 신분이었던 김 씨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들인 행위가 “사실상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김 씨가 자신의 직속상관이자 차기 대권주자인 안 전 지사에게 순응할 수밖에 없는 ‘을의 처지’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 매뉴얼’을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 매뉴얼에는 ‘(수행비서가) 항상 담배, 라이터 등을 소지해야 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목욕을 할 때도 휴대전화를 비닐로 싸서 소지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측은 김 씨와의 성관계 사실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안 전 지사 측은 “차기 대선 후보라는 지위가 위력이 될 수는 없다”며 “피해자는 무보수로 대선 캠프에 들어온 스마트한 여성인데 이런 주체적인 여성에게 어떻게 위력을 행사하고 수차례 성폭력을 지속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김 씨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위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를 핵심 쟁점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외국 판례 등을 검토하고 전문가를 외부 위원으로 지정해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밝혔다. 안 전 지사에 대한 2차 공판은 6일 비공개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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