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댄 시원하십니까? 나는 민망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9일 03시 00분


[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21>개성과 예절 사이 ‘노출 패션’



■ 지하철이 피서지? 노출 너무 심해 난감합니다

여름이 되니 출근길부터 난감한 시선 처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하철을 타면 양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를 입은 여성부터 겉옷인지 수영복인지 헷갈리는 탱크톱을 입은 대학생까지 곳곳이 노출의 연속입니다. 더워서 그런다지만 애꿎게도 제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아요. 괜히 드러난 몸매를 쳐다본다고 오해받을까 싶어 제 시선은 오늘도 휴대전화에 고정됩니다.

전 그래도 ‘양식 있게’ 갖춰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사무실에 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쿨비즈(Coolbiz·시원하고 간편한 비즈니스 복장)’가 대세인 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부장님은 넥타이 없이 출근했다는 걸 에둘러 훈계하듯 “요즘 회사가 편하지?”라고 한마디하시더라고요. 자외선이 눈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해서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했더니 건물 입구에서 절 본 동료 과장은 “연예인이냐”고 비웃고요. 여름철 복장, 대체 어디까지 벗고, 어디까지 입어야 하는 걸까요.
 
■ 때-장소 맞는 의상 매너 지키는 게 멋쟁이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얼마 전 난감한 상황을 겪었다. 언뜻언뜻 속옷이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은 학생에게 한마디 했더니 “대학생인데 옷도 맘대로 못 입어요?”라고 톡 쏘아붙이더라는 것. 그는 “해가 갈수록 학생들의 여름 옷차림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성’과 ‘예절’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름철 대학가는 노출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대표적인 곳이다. 대학생 장수민 씨(26)는 “교양 수업 때 ‘브라렛 패션’(브라톱을 겉옷처럼 입은)을 한 신입생이 들어왔는데 강의실에 있던 남학생들이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며 “패션 코드 자체가 몸매를 과감하게 드러내는 게 대세가 되다 보니 여자가 보기에도 난감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들은 대학생들보다는 보수적인 여름 옷차림을 선택하지만 이 역시 세대차가 있다 보니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시원한 소재와 캐주얼한 스타일의 ‘쿨비즈 룩’이 도입되면서 난해한 상황이 더욱 많아졌다. 권고된 ‘허용기준’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이 늘어난 것.

2015년부터 쿨비즈를 도입한 유통업체에 근무하는 정모 씨(33)는 몸에 착 달라붙는 티셔츠를 입거나 트레이닝복과 다름없는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동료를 볼 때마다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정 씨는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로마시대 무사 같은 샌들을 신고 온 후배를 볼 때면 한마디 할까 싶다가도 꼰대라는 지적을 받을까 봐 참는다”며 “치마 없이 레깅스만 입은 여사원을 보면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했다.

단정함을 중시하는 성당이나 교회 등 종교시설도 여름철만 되면 신도들에게 ‘노출 자제’를 요청하느라 진땀을 뺀다. 천주교서울대교구는 매년 7, 8월이 되면 주보를 통해 ‘여름철 미사 때의 복장’을 공지한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교회법에서 옷 규정을 엄격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심한 노출 패션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신자가 증가해 슬리퍼와 소매 없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고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여름철에도 단정한 정장 차림을 요구하는 법원 등 특정 업계에서는 ‘의상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법원에 협조 공문을 보내 ‘여름철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관행과 분위기 때문에 넥타이를 매는 변호사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여름 옷차림 선택은 자신의 취향·개성과 상황별 의상규칙 사이에서 조율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청청 디자이너는 “이슬람 문화권에선 여성들이 수영장에서도 온 몸을 가리는 수영복을 입듯이 어떤 상황에서 이상한 일이 어떤 상황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며 “직장과 종교시설, 학교 등 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의상 매너를 숙지하고 지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직장인들의 경우 업무와 관련한 외부인을 만날 상황이 많은 만큼 사내에서뿐만 아니라 회사 바깥에서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을 ‘비즈니스 드레스 코드’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언영 장안대 스타일리스트과 교수는 “남성의 경우 유두점이 드러나는 얇은 셔츠나 통이 너무 좁거나 넓은 반바지 등은 글로벌 복장 매너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덥더라도 속옷을 갖춰 입고 남들이 언짢아할 만한 복장은 피하는 게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소재나 가슴골이 너무 드러나는 옷 등은 피해야 한다. 상대방이 눈 둘 곳을 고민해야 하는 짧은 치마나 슬리퍼 등도 비즈니스 매너와는 거리가 멀다. 이 교수는 “여름철엔 회사 내에 격식을 갖춘 신발이나 정장을 따로 준비해 두는 것도 요령”이라며 “출퇴근할 때는 편한 복장을 하더라도 보고나 회의에선 바꿔 입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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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과 예절 사이#노출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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