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노환으로 사망한 강민창 전 내무부 치안본부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인물이다. 치안본부장은 지금의 경찰청장과 같은 위치. 경찰청은 1991년 내무부 산하에서 외청으로 독립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21세의 박종철 군은 주요 수배자인 친구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경찰에 강제로 끌려간 뒤 물고문을 받고 사망했다.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박종철 군이 식사 후 조사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기던 중 차 안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당시 유행어가 여기서 생겼다.
동아일보는 16일자 보도에서 박종철 군의 삼촌 박월길 씨의 증언을 인용해 ‘숨진 박 군은 두피 아래 출혈과 목 가슴 하복부 사타구니 등 수십 군데에 멍자국이 있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또 사회면 ‘대학생 경찰조사 받다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고문 드러나면 수사관 구속’이라는 부제를 붙여 박종철 군이 고문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17일자부터는 박종철 군의 시신을 처음 본 중앙대 부속병원 의사 오연상 씨와 부검에 입회한 한양대 부속병원 박동호 씨의 증언을 상세히 보도하면서 고문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19일자엔 1면 머리기사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의 사망이 수사관의 물고문 때문이었음을 인정하는 경찰의 공식 발표와 함께 사건의 전모를 전하는 기사를 실었다.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그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자체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박 군의 사망 원인을 규명한 결과 담당 수사관의 고문에 의한 사망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종철 군의 1주기가 다가오던 1988년 1월 12일 동아일보는 ‘(1년 전) 치안본부장 등 경찰 수뇌부도 고문 치사 사실을 알았지만 은폐했다’, ‘은폐 조작을 알고도 검찰이 상부 지시에 손이 묶였다’는 특종을 했다. 이 기사로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돼 처벌을 받았다.
한편,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은 6일 오후 11시40분경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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