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뒤 모습이에요. 눈가에 주름이 진해지고 턱살이 두꺼워졌네요. 조금 더 중후해 보이죠?”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관 현장지원계 사무실에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던 이상숙 행정관이 말했다. 화면에는 본보 기자(28)의 현재 모습과 20년 후 모습을 추정한 몽타주가 나란히 있었다. 이 행정관은 15년째 몽타주를 작성한 베테랑이다. 그는 이날 몽타주 제작 및 나이 변환 프로그램인 ‘폴리스케치(Polisketch)’를 이용해 기자의 연령대별 모습을 하나씩 만들었다.
○ 빛바랜 사진에서 현재 얼굴을 찾는다
‘여고생 살인사건’이 발생한 전남 강진군에서는 2000년과 2001년 연이어 초등생 2명이 실종됐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이다. 경찰은 계속 수사 중이지만 어릴 때 모습만으로 유력한 제보를 받기가 쉽지 않다. 두 초등생 가족은 어린 자녀의 사진을 바탕으로 현재 모습을 추정한 몽타주를 만든 뒤 전단에 실었다.
경찰은 2015년 폴리스케치 도입 후 지난달까지 실종 아동 47명을 몽타주로 만들었다. 보통 1명당 짧게는 2주일, 길게는 4주일 걸린다. 눈매의 미세한 변화 하나에도 전체 인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수정과 보완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과거 사진은 가장 중요한 단서다. 먼저 사진을 보고 폴리스케치 내 한국인 얼굴 데이터베이스(DB)를 활용해 얼굴형을 택한다.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적용해 만들어진 다양한 얼굴형이 있다. 이어 가장 비슷한 눈매와 입술 모양, 턱선, 머리스타일 등 각각의 형태를 고른다. 여기에 나이 변환을 적용한다. 한국인의 얼굴 표본을 DB화한 주름 두께와 얼굴형 등을 분석해 1년 단위로 세밀하게 변화를 유추해낸다. 한 살부터 100세까지 나이 조절이 가능하다.
외부 정보도 현재 모습을 추정하는 데 중요하다. 공격적 권위적 신뢰감 등 성격과 성향도 얼굴형에 적용할 수 있다. 본보 기자의 얼굴에 ‘공격적’ 성향을 입력하자 보다 날카로운 인상으로 변했다. 가족의 얼굴 특징도 큰 도움이 된다. 부모와 형제의 얼굴형은 물론이고 비만 같은 체형 정보를 반영할 수도 있다. 이 행정관은 “오래전 사진은 대부분 흐릿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족이 알려주는 정보가 실종 아동의 현재 얼굴을 예측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실종자 가족의 ‘유일한 희망’
폴리스케치 덕분에 70대 노모가 38년 전 실종된 아들 A 씨와 극적으로 만난 사례도 있다. 2016년 제작된 현재 모습을 추정한 A 씨의 몽타주 전단을 본 한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해 상봉이 이뤄졌다. 이 행정관은 “나이 변환 기술로 만든 A 씨의 몽타주와 현재 얼굴이 깜짝 놀랄 정도로 유사해 무척 신기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이 변환 기술이 약 80%의 유사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나주봉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모임 회장은 “현재 실종 아동 가족들은 자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나이 변환 기술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되면서 강도 및 절도 등 강력사건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몽타주를 제작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폴리스케치의 영역과 활용 가능성은 다른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실종 아동을 찾는 건 기본이고 북한에서 탈북자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몽타주를 만드는 일도 진행 중이다. 북한에서 인권 유린과 성폭행 등을 저지른 가해자를 몽타주로 만들고 나이 변환을 적용해 DB화하는 것이다. 남북 교류가 보다 자유로워지거나 통일이 된 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초 증거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폴리스케치를 개발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김익재 연구원은 “미래에는 유전자 정보만으로 현재의 얼굴을 추정하는 기술이 도입될 수 있기 때문에 실종 아동을 찾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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