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운전 차보다 사람이 먼저다]교차로엔 ‘전방향 횡단보도’ 설치해
日 나가노현 보행사고 35% 감소
보행자가 ‘무단횡단 유혹’을 스스로 뿌리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눈앞에 횡단보도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국내 도심의 횡단시설은 ‘200m 규칙’이 기본이다. 노인이나 어린이 등 교통약자 입장에서 200m는 심리적으로 꽤 먼 거리다. 횡단보도 사이 거리가 멀기 때문에 조금만 급하거나 차량이 보이지 않으면 무단횡단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전문가들은 ‘200m 규칙’이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한다.
해외에서는 무단횡단 문제를 해결하고 보행권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무단횡단을 줄이기 위해 보다 좁은 간격으로 횡단보도를 설치한다. 미국 버지니아주는 91m 간격으로 설치할 수 있다. 일본 시가지에서는 100m 간격의 횡단보도를 볼 수 있다. 한국 횡단보도 간격의 절반 수준이다. 독일, 영국, 프랑스는 아예 간격 기준이 없다.
‘전방향 횡단보도’도 쉽게 볼 수 있다. 전방향 횡단보도는 교차로를 지나는 차가 모두 동시에 멈추기 때문에 사고 가능성 자체가 줄어든다. 교차로를 가로지르면 최단거리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무단횡단 유혹도 줄일 수 있다. 일본 나가노(長野)현에서는 전방향 횡단보도를 설치한 뒤 3년간 보행자 교통사고가 35.3%나 감소했다. 국내에서도 경찰청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지난해 말부터 주거지역과 업무시설 밀집지역처럼 보행자 통행량이 많은 곳을 중심으로 전방향 횡단보도 설치를 늘리고 있다.
보행자 중심으로 횡단보도를 설치하면 차량 통행이 방해받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결과 횡단보도 설치 ‘200m 규칙’을 ‘100m 규칙’으로 바꿔도 차량 통행 속도는 크게 줄지 않았다. 경찰청 치안정책연구소가 2015년 서울 종로의 종로2∼4가 왕복 8차로 1km 구간에 100m 간격으로 횡단보도를 설치했다고 가정하고 분석한 결과 차량 흐름은 시속 0.1∼0.4km 느려질 뿐이었다.
‘보행자 작동 신호기’도 보행권과 차량 흐름을 둘 다 잡을 수 있는 대안이다. 보행자 작동 신호기는 버튼을 누를 때만 횡단보도 신호등이 작동한다. 보행자가 없을 때 불필요하게 멈추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 특히 보행자 통행량이 적은 야간에 차량 통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도입된 점멸신호에서도 보행자 통행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교통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적극적으로 도입돼 지역 규모에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한국은 최근에야 설치가 늘고 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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