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챙겨주신 박사님의 제자사랑 잊을수 없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2일 03시 00분


천성순 KAIST 前총장 제자들의 모임 ‘천사회’ 화제

천사회 가족들이 올 4월 26일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의 한 리조트에서 천성순 전 KAIST 총장의 부인인 김영자 여사(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팔순을 기념해 모였다. 천사회 제공
천사회 가족들이 올 4월 26일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의 한 리조트에서 천성순 전 KAIST 총장의 부인인 김영자 여사(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팔순을 기념해 모였다. 천사회 제공

올 4월 26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의 한 리조트.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고 천성순 KAIST 전 총장(사진)의 부인인 김영자 여사(80)의 팔순 축하연이 열렸다. 한국에서 날아와 축하연을 마련한 11명의 여성은 천 전 총장 제자들의 아내들.

김 여사는 “남편 때문에 이런 축하연을 받으니 더욱 그분이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자들은 직장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이들은 5월 2일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면서 애틋한 정을 나눴다.

천 전 총장은 1972년 미국 유타대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부의 해외 과학기술자 유치 정책에 따라 KAIST 설립 당시 교수로 참여했다. 이후 KAIST 총장(당시 원장)과 대전산업대 총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장을 지낸 뒤 2003년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30여 년 동안 KAIST 교수로 재직하면서 48명의 석사와 26명의 박사 제자를 길러냈다.

작고한 지 15년이 됐지만 사제의 정은 제자들과 그들의 가족들까지 참여하는 ‘천사회(천성순을 사모하는 모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12명의 제자와 가족들이 남편을 떠나보낸 김 여사를 위로하러 자주 찾아다니다가 자연스럽게 모임이 결성됐다.

천사회는 매년 천 전 총장의 기일인 2월 26일 정례적으로 만나고 그 사이에는 두 달에 한 번씩 친목 모임을 갖는다. 김 여사가 종종 기일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찾아와 함께 옛 추억을 되새기곤 한다. 제자들은 이와 별도로 학회 등으로 로스앤젤레스 주변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김 여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제자들은 스승을 학문적으로는 엄격하면서도 자유분방했고 개인적으로는 다정다감했다고 기억한다.

김재곤 한양대 교수는 “천 박사님은 전통 소재를 전공했지만 이를 고집하지 않고 당시 신학문인 화학증착을 스스로 연구해 제시함으로써 제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며 “그 덕분에 많은 제자들이 그 이후 새롭게 부상한 반도체 분야로 활발히 진출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박철순 교수는 “천 교수님은 학문적인 지식 이상의 가르침을 주셨다. 제자들의 진로를 제시해 주시고 졸업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염려해 주셨다”며 “그때의 감사했던 마음이 지금도 여전히 남아 사제의 인연이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천사회를 구성한 12명의 제자 가운데 5명은 국내 대학교수로, 6명은 대기업 임원으로, 1명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 여사는 제자들과 이들의 가족들에게 어머니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천 전 총장의 제자인 김상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의 부인 최복연 씨는 “김 여사님은 천사회 가족 아이들의 이름까지 일일이 기억하시면서 때마다 카드를 보내주시고 경조사를 잊지 않으신다”며 “스스로 철저한 자기관리로 감동을 주시는데 올해 팔순에는 5년 연습 끝에 제작한 성악 CD를 나눠주기도 하셨다”고 전했다. 최 씨는 “사제의 정을 가족들이 이어받아 느낄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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