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州 고교 학부모-행정실장 모의
서울-부산서도 유출로 재시험
16일 광주의 A고교는 이달 19, 20일 3학년을 대상으로 전 과목 기말고사를 다시 치르기로 했다. 6∼10일 치른 기말고사에 앞서 학부모 신모 씨(52·여)가 A고교 행정실장 김모 씨(58)에게 부탁해 전 과목의 시험지를 빼내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인 신 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들을 의대에 보내려고 하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를 비롯해 최근 서울, 부산에서도 내신 시험지 유출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수시 비중이 매년 증가하면서 내신 성적에 올인하는 학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 현장에 도덕 불감증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달 들어 부산 B고교, 서울 C고교에선 기말고사 재시험이 치러졌다. 모두 학생이 교사 연구실에 몰래 들어가 시험지를 유출한 사건 때문이다. 범행을 저지른 B고교 3학년 학생 2명과 C고교 2학년 학생 2명은 모두 퇴학 조치를 당했다. 관할 교육청은 해당 학교에 특별 장학을 실시했다.
시험지 유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것은 내신 성적이 대학입학에서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196개 대학의 2019학년도 수시 비중은 76.2%다. 2018학년도 73.7%보다 높은 역대 최고치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로 선발하는 정시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서울시내 한 고교의 진학담당 교사는 “고려대의 경우 정시 선발 비율이 15% 내외밖에 되지 않을 정도가 되면서, 상위권 학생 사이에서 내신이 나쁘면 대학 가기 어렵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안선회 중부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수시에서 수상 몰아주기, 서류 대필 같은 부정이 나타나자 시험지 유출조차 부정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도덕 불감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정직하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험지 보관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도 원인이다. 통상 인쇄 전 시험지 원안과 인쇄 후 시험지는 봉인해야 한다. 하지만 A고교에서 시험지 포장이나 봉인도 없이 등사실 책상에 수북이 쌓아 두는 등 관리가 허술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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