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의대 보내려고…’ 광주 고교 시험지 유출, 커지는 의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7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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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한 고교에서 학교운영위원장과 행정실장이 중간·기말고사 시험지를 통째로 빼돌린 사건에 금품수수와 윗선의 지시, 다른 조력자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17일 학교 시험지를 빼돌린 혐의(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광주의 한 고교 학교운영위원장 신모 씨(52·여)와 행정실장 김모 씨(58)의 집, 차량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해당 학교 행정실도 압수수색했다.

김 씨는 2일 오후 5시 반 3학년 기말고사 9개 전체과목 시험지 원본을 빼내 행정실에서 복사했다. 1시간 뒤 학교에서 10㎞정도 떨어진 도로에 승용차를 주차한 뒤 기다리고 있던 신 씨에게 9개 과목 시험지를 건넸다. 두 사람은 범행 하루 전날 카페에서 만나 30분 정도 범행을 모의했다. 경찰은 김 씨가 앞서 4월 중순경 중간고사 7개 과목 시험지를 복사해 신 씨에게 같은 수법으로 건넨 것을 확인했다.

차량에서 시험지를 은밀하게 건네받은 신 씨는 집 컴퓨터로 시험문제를 일일이 다시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경찰에서 “고3 아들에게 학교 시험지를 빼돌렸다고 말하는 게 양심에 걸려 학교 기출문제 족보라고 설명했다”고 진술했다. 의사인 신 씨는 아들을 의대에 보내고 싶어 시험지를 유출시켰다고 했다.

신 씨의 아들은 4월 25일부터 이틀 간 치러진 중간고사를 앞두고 빼돌린 7개 과목 시험지를 혼자 봤다. 하지만 이달 9~10일 진행된 기말고사에서는 수학과목 문제지를 같은 반 친구들에게 ‘기출 문제 족보’라며 보여줬다. 친구들이 수학과목 객관식 문제는 물론 서술형 문제까지 그대로 출제되자 시험지 유출 의혹을 제기하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경찰은 신 씨와 김 씨의 휴대전화, 계좌 등을 분석하고 있다. 김 씨가 무슨 이유로 시험지 유출사건에 관여했는지 밝혀내기 위한 것이다. 김 씨는 경찰에서 “학교운영위원장인 신 씨가 영향력이 있고 학사일정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딱한 사정을 감안해 범행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해당 고교는 19~20일 기말고사 재시험을 치를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간고사는 신 씨 아들이 시험지를 혼자 봤고 신 씨 아들은 자퇴하기로 해 중간고사는 재시험을 치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에서는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애꿎은 수험생들만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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