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의료법인 설립요건 강화
병원 임원 지위 매매 금지하고 이사 1명 반드시 의료인 선임해야
1월 화재로 155명의 사상자를 낸 경남 밀양 세종병원은 알고 보니 ‘사무장 병원’이었다. 이 병원을 운영한 의료법인 효성의료재단 이사장 손모 씨(56)는 의료인이 아니면서 영리를 꾀하려 의료법인을 불법 인수했다. 더 많은 이익을 위해 병원을 불법 개조한 게 피해를 키운 결정적 이유다.
보건복지부가 17일 사무장 병원을 뿌리 뽑기 위해 의료법인 설립요건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사무장 병원이란 의료기관을 설립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사 한의사 등 의료인을 ‘바지(가짜) 사장’으로 고용하거나 명의를 빌려 불법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우선 의료법인 임원 지위를 매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현행법상 병원은 의사, 의료법인, 비영리법인만 설립할 수 있다. 자신이 의사가 아니라면 의료법인을 세워야 병원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성과 사회기여 등 의료법인 설립 허가가 까다로운 탓에 의료법인 이사장 자리를 20억∼30억 원에 매매하는 불법이 횡행하고 있다. 이에 임원 지위 매매를 금지하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사회에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비율을 제한하고 이사 중 1인 이상은 의료인을 선임하도록 했다. 건강보험공단 이윤학 부장은 “친인척이 장악한 이사회에서 이사장 월급으로 수억 원을 지급하는 등의 배임, 횡령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의료기관을 설립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현재는 지역 주민이 비영리법인인 ‘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을 구성해 지역 내 병원을 자치적으로 설립할 수 있다.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 제도가 사무장 병원 설립에 악용되고 있다. 이에 기존 의료생협은 복지부의 감독을 받는 의료사회적협동조합(의료사협)으로 전환된다. 복지부는 사무장에게 면허를 대여해준 의사가 자진 신고하면 의료법상 면허취소 처분을 면제해 주는 ‘자진신고제’도 추진한다.
정부가 사무장 병원에 칼을 빼든 것은 매년 사무장 병원이 늘고 있는 데다 여기에 지급된 건강보험 진료비를 대부분 환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장 병원은 불법인 만큼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2009∼2017년 적발한 사무장 병원 1273곳에 지급한 진료비 1조8112억8300만 원을 환수 결정했지만 지금까지 환수한 금액은 7.3%인 1320억4900만 원에 불과하다. 대부분 재산을 은닉했기 때문이다. 복지부 정은영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사무장 병원의 비급여 진료비를 몰수, 추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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