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2시 대구 시내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한 외국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 외국인을 힐끔 쳐다봤다.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외국인이 더위를 참지 못하는 모습이 의아했던 것이다.
카방가 에스푸아 카문달라 씨(27)는 실제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출신이다. 현재 대구대 컴퓨터정보공학과 연구원으로 한국 생활 3년째다. 하지만 아직도 대구 더위가 익숙지 않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단언컨대 아프리카 대륙 54개국 중 대구보다 더 더운 곳은 많지 않다”며 “대구대에만 아프리카에서 온 친구가 50여 명이 있는데 모두 한여름 대구는 아프리카보다 더한 ‘생지옥’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이날 대구의 한낮 기온은 37.4도였다.
○ 아프리카인에게도 힘든 대구의 여름 카문달라 씨의 말은 엄살이 아니다. 그의 고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의 중심(북위 5도∼남위 13도)에 위치해 있다. 적도가 관통하지만 가장 덥다는 수도 킨샤사조차 한여름 기온이 33도를 좀체 넘지 않는다. 22일 한낮 기온을 비교해보니 대구는 36.3도인 반면에 킨샤사는 30도였다.
이날 아프리카 주요 도시 가운데 대구보다 기온이 높은 곳은 많지 않았다. 적도와 가까운 케냐 나이로비(남위 1도)는 20도였고, 남북으로 위도가 비슷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남위 34도)과 모로코 라바트(북위 34도)는 각각 26도였다. 그나마 사막에 위치한 이집트의 카이로(북위 30도)가 38도로 대구보다 높았다.
장용규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연구소장은 “아프리카는 우리나라처럼 동고서저 지형으로 동·남부는 평균 고도 1600m의 고지대라 평균기온이 20도 안팎으로 선선하고, 중·서부가 덥고 습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중·서부도 여름철 대구만큼 덥진 않다. 콩고민주공화국만 해도 내륙에 위치한 데다 넓고 평탄한 분지 지형이라 공기 흐름이 원활하고 해류의 영향으로 연중 28∼33도의 일정한 온도를 나타낸다. 장 소장은 “다만 사막에 가까운 지역은 여름철 고온을 기록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대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극서(極暑)지역이다. 1942년 8월 1일 대구의 수은주는 40.0도를 나타내 지금까지 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특히 대구는 2014년부터 아프리카만큼 덥다는 의미에서 ‘대프리카’라는 별칭을 얻었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대구뿐 아니라 주요 도시의 한낮 기온이 대부분 35도 이상을 기록한다. 최근에는 ‘광프리카(광주)’ ‘서프리카(서울)’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22일 서울은 1994년 이후 가장 높은 38.0도를 기록해 사막 도시 카이로와 같은 온도를 기록했다.
○ 아프리카보다 더 더운 이유 있다
전문가들은 북위 30∼40도에 위치한 한반도가 유난히 더운 이유로 높은 습도와 지형을 꼽는다. 서경환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기본적으로 습도가 높은데, 공기 중 습도가 높으면 열을 가두기 때문에 습도가 낮은 곳보다 온도가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점도 여름철 고온의 주원인이다. 서 교수는 “기본적으로 산이 많으면 대구 분지처럼 공기가 정체되고 푄현상(공기가 높은 산을 타고 넘으며 고온 건조해지는 현상)이 발생해 고온 건조한 공기가 넘어온다”며 “이때 기존 습도가 워낙 높다 보니 건조함이 사라지고, 고온 다습한 공기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높은 도시화도 한반도가 아프리카만큼 뜨겁게 달궈지는 이유 중 하나다. 땅덩어리가 좁은 탓에 우리나라의 도시화 비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스팔트와 고층 빌딩으로 인한 도시열섬 현상은 여름철 기온을 급격히 끌어올린다.
기상청이 2016년 8월 2∼9일 서울의 도시열섬강도를 분석한 결과 같은 서울 내에서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역은 초지로 된 지역에 비해 온도가 최대 3.2도 높았다. 변재영 국립기상과학원 연구관은 “포장도로, 고층건물, 자동차, 산업시설 같은 인공적 도시의 특징들은 교외 지역과는 전혀 다른 기후특징을 만들어낸다”며 “도시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려면 건물과 인공열 정보 등을 함께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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