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행정처 2016년 9월 작성
“향응 판사 1, 2심 관여해 외부 누설, 檢이 파악… 항소심 제대로 진행을”
당시 문건대로 이뤄진 것에 주목… 양승태 前대법원장 등 출국 금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2016년 부산지역 건설업자의 뇌물 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 관여하려 한 정황이 담긴 법원행정처 문건을 검찰이 확보해 실행 여부 등을 수사 중인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봉수)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59)의 컴퓨터에서 최근 ‘A 판사 관련 리스크 검토’라는 제목의 문건을 확보했다.
2016년 9월 말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작성한 A4용지 4, 5장짜리 문건에는 건설업체 H사의 대주주인 정모 씨(54)로부터 향응을 받은 부산고법 A 판사가 정 씨 사건 1, 2심에 관여해 재판 내용이 외부로 누설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 수사관을 통해 부산고법 관계자가 전해 들었다는 전제 아래 이 같은 내용을 검찰이 파악 중이라는 문구도 있다.
이 문건에는 또 ‘무죄가 선고될 경우 관련 의혹이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항소심은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직권 재개 후 (증인 심문을) 1, 2회 추가 진행한다. 주심 판사에게 전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행정처 고위 관계자가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부산고법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는 경로도 나와 있다.
검찰은 정 씨의 항소심이 문건 내용대로 진행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 씨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5000만 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2016년 9월 22일 변론을 종결하고, 결심공판을 예고했다가 그해 11월 선고 대신 변론 재개를 결정했다. 그 뒤 두 차례 증인 심문을 위한 추가 공판이 열렸지만 30분∼1시간 만에 끝났다. 이듬해 2월 선고 때 정 씨에게 징역 8개월이 선고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법정 구속을 하지 않아 검찰에선 ‘타협 판결’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검찰은 문건을 법원행정처의 하급심 재판 개입 증거로 보고 있다.
이 사건은 2015년 부산지검 특수부의 수사 때부터 논란이 됐다. 구속영장이 두 차례 기각됐기 때문이다. 특히 도주 중 체포된 정 씨는 두 번째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했는데도 기각돼 법원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는 불만이 검찰에서 터져 나왔다.
당시 검찰은 같은 해 9월 A 판사가 정 씨에게서 여러 차례 골프 등의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해 대법원에 통보했다. 그러나 A 판사는 구두경고만 받고, 2017년 2월 변호사로 개업했다. 검찰은 당시 법원이 A 판사와 정 씨의 의혹을 감추려고 했다고 보고,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9·수감 중)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문건에는 한 언론이 정 씨의 영장 기각을 보도하려고 하자 ‘당시 현 수석을 통해 막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문건에는 현 전 수석이 당시 대법원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청와대의 중요 파트너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검찰은 재판 관여 의혹을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0)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61), 임 전 차장을 출국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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