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편특위 최종 권고안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의 최종 권고는 대기업 총수 일가가 우회적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뒀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한 것 역시 총수 일가에 부(富)가 집중되는 현상을 차단하는 것과 더불어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이다. 대기업을 코너로 몰아세우는 권고안에 대해 재계는 “우리의 기업 지배구조를 무조건 악(惡)으로 취급하는 편견을 드러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의결권 제한 강화로 재벌 개혁 본격화
29일 특위가 내놓은 최종보고서에는 공익법인 및 금융계열사, 기존 순환출자 등 크게 세 분야에서 의결권 규제를 강화하라는 권고가 담겼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부터 제도 개편을 주장했던 분야들이다.
특위는 금산분리를 원칙적으로 지켜야 할 대기업 금융계열사들이 총수의 지배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봤다. 의결권을 5%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예를 들어 5월 말 기준 공시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각각 7.25%. 1.27%의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현행 기준대로라면 두 회사의 지분 8.52%는 총수 등 특수관계인 지분과 합산해 15% 이내에서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가 강화되면 삼성생명과 화재의 지분으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은 8.52%에서 5%로 줄어든다. 공익법인 역시 금융계열사와 같은 방식으로 의결권이 제한된다.
기존 순환출자 규제 강화는 아직 순환출자를 해소하지 못한 대기업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현재 삼성, 현대자동차 등 6개 대기업집단은 41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하고 있다. 이에 대해 특위는 기존 순환출자의 의결권을 제한하라고 요청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다. 3개 회사의 마지막에 있는 기아차 지분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하라는 것이다. 이 권고가 현실화하면 기아차는 현대모비스 지분 16.87%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 기업이 경영권을 위협하면 방어하기 쉽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특위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가 지분을 30% 이상 보유한 상장사와 20% 이상 보유한 비상장사에서 상장사, 비상장사 지분 기준을 20%로 일원화하라고 권고했다. 공정위가 권고안을 받아들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회사는 지난해 기준 203개에서 최소 441개로 늘어나게 된다.
○ 무늬뿐인 벤처 활성화
이런 대기업 규제와 달리 특위는 대기업이 혁신성장에 기여하도록 벤처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그러나 업계가 핵심으로 보는 벤처지주회사 내 벤처캐피털회사(CVC) 허용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견을 내며 공정위가 규제를 유지할 명분을 준 셈이 됐다.
특위는 보고서에서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벤처지주회사 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진수 전면개편 특위 위원장(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벤처지주회사가 되기 위한 자산 요건과 벤처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요건을 완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가 요구하는 벤처지주회사 내 벤처캐피털회사 설립은 권고안에서 제외됐다. 벤처캐피털은 금융회사로 분류돼 금산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벤처캐피털을 통해 2013년 이후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관치의 부활” 우려하는 재계
법 개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경제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25일 열린 공정거래법 관련 토론회에서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거래법은 경제력 집중 억제를 이유로 재벌 및 대기업집단을 규제하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정부가 민간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 의사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금융계열사 지분을 제한하는 것은 관치의 부활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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