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임차료 15만8000원 ‘청춘창고’서 시작… 이젠 ‘사장님’ 됐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1일 03시 00분


요식업 지원센터서 꿈이룬 청년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청년상상놀이터’의 공유주방에 입주한 청년들이 19일 갓 구워낸 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별도의 주방설비를 구매할 필요 없이 메뉴 실험을 하며 음식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공유주방의 장점이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북 전주시 완산구 ‘청년상상놀이터’의 공유주방에 입주한 청년들이 19일 갓 구워낸 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별도의 주방설비를 구매할 필요 없이 메뉴 실험을 하며 음식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공유주방의 장점이다. 전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이제 뭐 먹고 사나….”

6년간의 직업군인 생활 뒤 제대한 청년은 눈앞이 캄캄했다.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그는 요식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일단 노점에서 크레페를 만들어 팔아보니 승부를 걸만 했다. 언제까지 계속 길거리를 맴돌며 장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만 수천만 원에 이르는 보증금을 내고 가게를 얻을 여력은 없었다.

그러다가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고향인 전남 순천시에서 양곡창고를 개조해 푸드코트식 공간을 만들어 가게를 열 기회를 준 것이다. 2017년 2월 1기로 입주한 그는 10개월 동안 스테이크와 크레페를 팔아 1억 원 넘는 매출을 올리며 정식 가게를 차릴 돈을 벌었다. 작년 12월에 순천에서 어엿한 동네 고깃집 사장이 된 김종효 씨(29) 이야기다.

○연 임차료 15만8000원으로 입점 가능

김 씨가 꿈을 펼쳤던 공간의 이름은 ‘청춘창고’다. 순천시는 쓸모가 없어진 농협 양곡창고를 청년들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1층과 2층엔 각 9.9m², 8.25m² 점포들이 들어찼다. 1층에는 10여 개의 음식점이, 2층에는 수제공방들이 입주했다. 창고 중앙엔 공연을 관람하거나 휴식할 수 있는 대형 계단과 테이블이 있다. 푸드코트처럼 각 점포에서 음식을 주문한 뒤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다시 그릇 등을 반납하면 된다. 이달 중순 기자가 방문한 청춘창고에는 평일임에도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식사와 디저트를 즐기고 있었다. 창고 관계자는 “월 2만여 명이 이곳을 방문한다. 주말엔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아 더 붐비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순천시가 이런 공간을 구상한 것은 지역 특색과 관련이 깊다. 호남지역은 음식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 들어 ‘순천만’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으면서 유동인구가 많아졌고, 요식업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청년들이 가게 임차료가 없어 창업의 벽에 부닥치는 사례가 많았다. 순천시는 이런 청년들을 위해 보증금 없이 연 15만8000원(9.9m² 기준)에 최장 2년까지 ‘청춘창고’의 점포를 임대해주고 있다.

단순히 헐값에 공간만 내어주는 건 아니다. 지역사회의 성공한 요식업 관계자들을 연결해 노하우를 전수받을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음식 장사에 필요한 서비스 매너를 배우도록 외부강사를 초빙했다. 운영에 관한 사항들은 입주 청년들끼리 상의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당장 조리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입주할 수 있지만 1년 안에는 자격증을 따야 한다.

순천대 앞에서 수제버거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송용암 씨(34)는 ‘청춘창고’ 입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요식업 창업을 위해 무작정 서울로 둥지를 옮겨 1년간 햄버거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레시피를 개발했다. 2017년 ‘청춘창고’에 입점해 크게 성공했고 그해 순천대 인근에도 매장을 열었다. 송 씨는 “정식으로 가게를 열기까지 청춘창고의 도움이 컸다”며 “앞으로 분점을 7개 내는 것이 사업 목표”라고 말했다.

‘청춘창고’는 음식 판매 외에도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초 홍석천, 유병재 등 입담이 뛰어난 방송인들을 연사로 초청해 ‘실패학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유광준 순천시 경제진흥과 주무관은 “상업적 목적이 아니라면 청춘창고 내 공간을 무료로 대관해준다”며 “청년들이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고, 입점 업체는 음식 판매 수익을 높일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공유주방’에서 요리하는 꿈

전북 전주시도 ‘맛의 고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곳이다. 한옥마을 여행 수요가 높아지고, 장터에서 퓨전음식이나 한국식 디저트 판매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지역적 특색을 활용한 요식업 창업이 구직난 해결의 묘수가 될 수 있다.

전주시의 ‘청년상상놀이터’에는 요식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한 공유주방이 마련돼 있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청년사업가들이 이 주방에서 메뉴를 개발하고, 판매도 해보면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재 디저트 담당 이기상 씨(33)와 수제청 음료 전문 고자옥 씨(30)가 입주해 있다. 두 사람은 공유공간에서 만나 메뉴에 대해 서로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음료를 먹으러 왔다가 크레페를 먹는 손님들이 늘어나는 등 시너지가 발휘되고 있다. 또 ‘상상놀이터’에서 시작한 덕분에 주방설비에 필요한 자본을 아낄 수 있었다.

김지은 전주시 청년일자리담당 주무관은 “공유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동안 전문 요식업 창업 컨설턴트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을 예정”이라며 “지역적 특색에 맞춰 요식업 창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모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전주=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청년센터#요식업 지원센터#순천시 청춘창고#전주시 청년상상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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