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경기 오산시 운암고 3학년인 류아영 양(18)은 올해부터 학교의 무감독 시험 결정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수시 전형을 노리는 류 양은 “부정행위가 생기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다.
4월 말 중간고사가 열렸다. 강당에 놓인 280여 개 책상에 고3 학생들이 모두 앉자 교사 8명이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준 뒤 퇴장했다. 시험이 끝나기 5분전에 다시 교사들이 들어와 답안지를 걷어갔다. 일주일 뒤 1, 2학년들도 무감독 시험을 치렀다. 부정행위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최근 내신 경쟁이 과열되면서 일부 고교에서 내신 시험지 유출 사고가 잇따라 일어나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국 10여개의 학교들은 학생들의 양심을 믿고 무감독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
● 학생-교사 모두 만족도 높은 무감독 시험
무감독시험 뒤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운암고 3학년 이명분 양(18)은 “시험을 마칠 때까지 엎드려 자는 학생이 없을 정도로 집중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현서 양(18)은 “양심대로 행동하는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무감독 시험을 통해 자율적이고, 스스로 책임지는 학생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컸다.
교사들도 학생들의 도덕성과 양심을 기를 수 있는 무감독 시험을 반겼다. 운암고 조찬영 교사는 “처음에는 부정행위가 염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행위는 전혀 발생하지 않았고 학생들의 전체 평균 성적도 지난해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말했다.
정상열 운암고 교장은 “무감독시험을 무작정 밀어붙였다가 부정행위가 발생하면 사회적 물의만 일으켰을 것”이라며 “3년간 학생, 학부모, 교사 간 신뢰를 쌓은 끝에 무감독 시험을 올해 실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전국 10여 곳에서 무감독 시험 실시
무감독시험을 수 십 년간 이어온 학교들도 있다. 인천 제물포고와 서울 중앙여고는 각각 1956년, 1977년부터 무감독시험을 실시하고 있다. 교사는 시험시간 긴급 상황에 대비해 복도에서만 대기할 뿐이다.
제물포고는 무감독 시험이 폐지될 뻔한 적도 있었다. 1981년 단체 컨닝사태로 한 반 전체가 0점 처리된 것. 하지만 ‘양심의 1점은 부정의 100점보다 명예롭다’고 믿는 학생과 교사들의 노력으로 학교 전통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 학교 출신인 윤진노 제물포고 동창회 사무국장은 “우리 학교 출신은 그 누구보다 ‘양심적이다’란 자부심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 이천 양정여고, 경북 김천 성의여고, 전남 여수 석유화학고 등 10여 곳의 고교가 무감독 시험을 치르고 있다. 전국 약 2300개 고교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유희관 중앙여고 교감은 “올해 무감독 시험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한 학교 관계자들이 찾아왔지만 부정행위 등을 우려해 도입을 못하겠다고 했다”며 “인성 교육보단 내신과 입시가 중요한 현재의 대입 제도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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