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전용 알바 건당 15만원”… 보이스피싱 수금책 낚는 미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7일 03시 00분


수상한 아르바이트 지원해보니


“○○○ 씨, 몇 살이에요? 서울 근무 가능하죠?”

지난달 한 구인구직 커뮤니티에 ‘여성 전용 외근 아르바이트’ 모집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서울 근무 가능한 20대 여성’이라는 것 외에 별 조건이 없었다. 그런데 ‘수당은 한 번에 15만 원’이라고 했다. 회사 연락처도 없이 카카오톡 아이디만 적혀 있었다. 여러모로 의심쩍었다.

기자는 지인에게 부탁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고용주를 만나는 절차도 없이 보이스톡 한 통으로 면접은 끝. 수화기 건너편의 남성은 다음 날부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바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업무도 간단했다. 카카오톡으로 서류 파일을 보내주면 출력해서 기다리다가 이 남성이 알려주는 고객을 찾아가 서명을 받고 돈을 받아오면 된다고 했다. 그는 이 과정을 ‘가상화폐 환전’이라고 했다.

○ ‘수상한 알바’의 정체

단순한 업무에 적지 않은 수당을 준다는 대목에서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봤지만 없었다. 사무실 주소를 물어보니 “서울 역삼동, 동대문, 수원 인계동에 있다”고만 했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 “이쪽 일이 낯설어서 의심을 하는 것”이라며 계속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경찰에 문의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르바이트로 위장한 보이스피싱 조직의 수금책 모집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속이 강화돼 ‘대포통장’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지자 보이스피싱 조직들은 직접 피해자를 만나 돈을 받는 ‘대면편취’ 방식으로 바꾸고 있다. 올 상반기 서울에서 발생한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의 57.6%가 대면편취 방식이었다.

범행 방법은 기존 보이스피싱과 비슷하다. 검찰, 경찰, 금융감독원을 사칭해 피해자에게 ‘금융사기에 연루됐다’, ‘범죄 혐의를 벗어나려면 계좌에 있는 돈을 출금해 직원에게 줘야 한다’고 속인다. 아르바이트생에게는 금감원에서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서류를 준다. 피해자는 아르바이트생을 만나 서명을 하고 계좌에서 인출한 돈을 건네준다. 이 수법은 피해자와 대면한 사람이 노출된다. 그래서 보이스피싱 조직은 ‘잘라버릴 꼬리’ 역할을 할 아르바이트생을 속여서 구하는 것이다.

○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전락

실제로 ‘수상한 알바’를 했다가 낭패를 본 이들도 있다. 취업준비생 A 씨(28·여)는 4월 중순부터 다섯 차례 가상화폐 거래자를 만나 서류와 돈을 주고받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A 씨는 받은 돈에서 수당을 제외한 금액을 회사 계좌로 입금하거나 직원을 만나 건넸다. A 씨는 경찰에 붙잡힌 뒤에야 가상화폐 거래자는 보이스피싱 피해자, 회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구치소에서 만난 20대 여성 10여 명이 비슷한 알바를 하다가 잡혔다고 했다”고 전했다.

몰랐다고 해서 처벌을 피하기는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여러 차례 범죄에 가담했다면 정말 몰랐는지, 알고도 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정부기관 명의 서류를 받거나 수상한 일을 시킨다면 해당 기관에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보이스피싱#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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