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신생아실에 산모님 아기랑 다른 아기 둘뿐이에요.”
신생아실 간호사가 말했다. 출산한 날 밤부터 2시간에 한 번 신생아실 옆 수유실에서 수유를 시작했는데, 통 다른 산모를 볼 수 없어 의아했다. 알고 보니 산모가 나랑 다른 산모 달랑 둘 뿐이라는 거다. 다음날, 병원을 찾은 가족들과 신생아 면회실에 들어가 보니 정말 그 넓은 신생아실에 대부분이 빈 침대였다.
생각해보면 출산했던 날 분만실도 텅 비어 있었다. 검사를 받고 아기를 낳은 뒤 후처리를 끝내고 나갈 때까지 다른 산모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모두 합쳐 4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 걸 감안해도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내 출산 병원이 2차병원급의 작은 동네병원이긴 했다. 그래도 그동안 둘째, 셋째를 모두 이 병원에서 낳으면서 그처럼 사람이 없는 걸 본 적이 없다.
한때 다른 산모들로 가득했던 4인실, 6인실 등 다인병실도 이제 다른 부인과 환자들의 차지가 돼있었다. 한 번은 다인실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신생아는 병원 원칙상 다인실에 머물 수 없다) “신생아는 아니고 그보다 큰 아기 환자 울음소리”라고 했다. 부인과 환자로도 병실이 다 차지 않아 소아청소년과 환자까지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산후조리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조리원 역시 내가 둘째, 셋째 때 모두 산후조리를 한 곳이다. 당시 내가 머무는 동안에만 10~20명의 산모들이 들고 나며 북적댔던 기억이 있다. 한데 이번에 와서 보니 산모 수가 나를 포함해 4명에 불과했다. 일주일 뒤 2명이 추가로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봐야 6명. 산모방은 총 4개층에 걸쳐있는데 층마다 사람이 한둘뿐이라 밤이 되면 빈 건물처럼 괴괴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신생아 40만 명 선 붕괴’ ‘합계출산율 1.0 미만 눈앞.’ 이런 기사들을 써왔던 나에게도 막상 맞닥뜨린 이런 저출산의 현실은 놀라운 것이었다. 내가 셋째를 출산한 것이 불과 3년 전인데 그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이렇게 출생아가 줄었단 말인가. 전문가들이 ‘이르면 내년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주저앉을 수도 있다’고 할 때마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겠다’ 싶어도 솔직히 ‘설마…’했는데.
혹시 한여름이라 출산율이 다소 떨어진 건 아닐까? 조리원 직원들은 세상물정을 모른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달뿐만이 아니에요. 요새 정말 아기를 안 낳는다니까요.”
생각해보면 얼마전 산부인과의 대명사로 알려진 서울 제일병원도 ‘저출산으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하다 임금을 체불해 파업사태에 이르지 않았던가. 한때 자리가 없어 못 들어갔다던 제일병원 연계 산후조리원도 폐쇄한지 벌써 1년이 됐단다. 대형병원도 그럴진대 내가 다닌 곳을 비롯해 중소규모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은 오죽했을까 싶긴 하다.
다자녀 엄마라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보육 전문가란 소리를 듣고 있지만, 나는 보육을 잘 한 게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 셈이다. 만약 내가 가진 조건들 중 하나라도 삐걱댔다면, 예를 들어 친정엄마가 몸이 불편하셔서 아이를 봐주실 수 없는 처지였다면, 시댁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매달 돈을 보태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어린이집이나 아이돌보미를 이용할 수 없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처럼 아이를 4명이나 낳을 수 있었을까?
지난 한 주 병원과 산후조리원에서 새삼 나의 ‘좋은 운’을 깨닫고 겸허해졌다. 남들이 ‘애국자’니 ‘천연기념물’이니 추켜 세워주니 나도 모르게 잠깐 대단한 투사라도 된 양 우쭐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은 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나도 당신 같은 처지면 아이를 낳았을 거예요’라고.
어찌 보면 이번 육아휴직은 잠시 현실과 동떨어져 숫자로만 저출산을 바라봤던 내게 다시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라고 하늘이 준 기회일지 모르겠다. 또 일을 쉬게 됐다며 한탄했었는데, 기왕에 하는 일 더 잘 하라고 ‘복덩이(태명)’가 온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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