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흥미로운 논쟁이 하나 있다. 1994년 ‘대폭염’을 능가하는 올해 ‘슈퍼 폭염’이 출산율을 더 악화시킬 것이냐는 논쟁이다. ‘날씨가 너무 더워 사람들이 귀찮아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자연히 임신이 줄고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것’이란 가설이다.
올해 신생아 수는 32만 명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역대 최저치다. 합계출산율(15~49세 가임기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도 연간 1.0명 이하가 예상된다. 만약 폭염이 출산율을 더 떨어뜨린다면 내년 상황은 더욱 암담해진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한국성과학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윤수 이윤수조성환비뇨기과 원장은 “폭염은 섹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운을 뗐다. 날씨가 더우면 남녀가 살을 맞대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 더위에 식욕이 떨어지고 덜 먹게 돼 신체 에너지도 부족해진다. 고환이 뜨거워져 정자의 활동성도 떨어진다.
반면 윤태기 차의과학대 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날씨와 부부관계의 연관성은 추측일 뿐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동물은 계절에 따라 섹스 횟수에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인간은 계절과 섹스의 상관관계가 거의 없어 ‘항상성’을 유지한다. 날씨가 더우면 오히려 외출을 하지 않고 실내에 머물러 부부관계가 늘어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폭염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이 있는 지 찾아봤다. 미국 툴레인대 알란 바레카 교수는 1931~2010년 미국 내 출산율과 기온의 연관성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 32도 이상 더운 날이 집중된 이후 8~10개월이 지나면 출생률이 떨어졌다. 특히 폭염이 오고 9개월째 출산율은 폭염 당시 출산율에 비해 0.4%포인트 낮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폭염이 심했던 1994년 여름부터 10개월 후인 이듬해 5~7월 신생아수를 찾아봤다. 1995년 신생아수는 5월 5만5508명, 6월 5만3353명, 7월 5만4285명으로 1994년 같은 기간보다 1000~4000명 가량 적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폭염이 저출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1996년, 1997년 신생아수도 각각 전년 같은 기간보다 더 줄었다는 데 있다. 매년 신생아 수가 줄다보니 폭염의 영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관계자는 “출산율이 높다면 폭염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국은 저출산이 너무 심해 폭염은 변수가 못 된다”고 했다.
폭염이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싶어 시작한 취재는 결국 한 지점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한국은 저출산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바로 그 지점이다. 합계출산율이 1.0명 이하로 추락한다는 건 구성원들이 이 사회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나 발생하는 일이다.
취업난과 양극화 등으로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이미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로 인식된다. 에어컨은 잠시 더위를 식힐 뿐이다. 온실가스를 줄여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폭염 자체를 줄일 수 있다. 저출산도 마찬가지다. 땜방식 출산정책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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