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 스님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잘못된 한국 불교를 바꾸려 종단에 나왔지만 뜻을 못 이루고 산중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조계종의 국회 격인 중앙종회는 16일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가결시켰다. 설정 스님의 사퇴는 22일 원로회의의 불신임안 인준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설정 스님은 “조계종을 10%가량의 특권층을 위한 종단으로 보는 이도 있다”며 “총무원장으로 1994년 개혁 당시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고 싶었으나 소수 정치 권승(權僧)들이 종단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기자회견 뒤 조계사 대웅전에서 참배하고 곧장 재적 본사인 수덕사로 떠났다. 퇴진 표현은 없었지만 “돌아가겠다”며 조계사를 떠나 총무원장직을 내려놓은 셈이다.
은처자(隱妻子·숨겨 놓은 처와 자식) 논란은 다시 부인했다. 스님은 “그런 일이 있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며 “나를 보호해야 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불교계에 따르면 설정 스님은 불신임안 가결 뒤 원로 설득에 나섰으나 여의치 않았다. 주변 압박을 받은 측근들마저 사퇴를 종용했다. 이제 조계종은 총무원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되며 종헌종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총무원장은 총무부장인 진우 스님이 대행한다.
한편 자승 전 총무원장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앙종회·교구본사협의회와 승려대회를 준비해온 전국선원수좌회 등 개혁 그룹의 대결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승려대회 봉행준비위원회는 23일 예정됐던 전국승려대회를 태풍의 영향으로 26일 오후 2시 조계사에서 개최한다. 중앙종회·교구본사협의회 주도의 교권수호결의대회도 같은 날 오전 11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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