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 구하려다 끝내… 불길 뛰어든 2인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3일 03시 00분


인천 남동공단 화마속의 의인들

21일 인천 남동공단의 세일전자 화재로 희생된 근로자 9명의 합동 분향소가 차려진 가천대 길병원 장례식장에는 22일 하루 종일 통곡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예기치 못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울다가 지쳐 주저앉았다. 조문객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동료를 구하려 화마 속으로 뛰어 들어간 이들의 사연이 알려져 유족들의 슬픔은 더욱 커졌다. 세일전자 4층 전산실에서 근무하는 민모 과장(35)은 21일 오후 1층에서 화재를 처음 목격하고 119에 신고했다. 그대로 1층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지만 민 과장은 “불이야”라고 외치며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위험에 빠진 직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민 과장 본인은 끝내 화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민 과장의 어머니는 빈소에 마련된 그의 영정 사진 앞에서 “거길 왜 들어가 거길…”이라며 오열했다.

약 30년간 이 회사를 다녔다는 김모 씨(51·여)도 불길 앞에서 탈출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제품검사 담당이었던 김 씨는 검사실에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동료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각 검사실을 돌며 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김 씨의 올케는 “(김 씨가) 동료들을 찾으러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다가 한 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자기가 못 나온 것 같다”며 “창가 난간을 잡고 있다가 연기를 너무 마셔서 떨어진 것 같다”고 울면서 말했다.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포장을 맡았던 협력업체 직원 신모 씨(24·여)는 입사 넉 달 만에 사고로 희생됐다. 신 씨의 가족은 24일 아버지 생일을 맞아 주말에 여행을 가기로 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려던 신 씨의 계획도 무산돼 버렸다.

이모 씨(34·여)의 유족들은 이 씨의 마지막 목소리가 생생하다고 했다. 이 씨는 화재 발생 직후 했던 어머니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불이 나서 갇혔다. 죽을 것 같다. 119 신고 좀 해 달라”고 말한 뒤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희생자들은 사고 당시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전산실로 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산실에서 5명의 희생자가 발견됐다. 화재 당시 자력으로 탈출한 한 직원은 “화재 직후 복도가 암전 상태가 됐는데 전산실에서 불빛이 새나오자 한 명이 그곳으로 피했고 다른 직원들도 따라간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전산실은 비상구와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 유족은 “미리 대피로를 알려줬어야지…”라며 가슴을 쳤다.

인천=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인천 남동공단#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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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많은 댓글

  • 2018-08-23 07:51:04

    나라에 불행이 계속 연이어 터지니 .... 북한에다가 쏟는 관심을 10분의1만 국민들 안전관리에 써도 이 정도는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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