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시청 별관에 있는 ‘경산시 폐쇄회로(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시내 방범용 CCTV 화면을 관찰하던 모니터링 요원 A 씨의 눈이 번쩍 뜨였다. 시내 중방동 중앙로 19길 골목에 설치된 한 CCTV에서 10대 남학생 두 명이 60대 중반 남성을 바짝 뒤따라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른 새벽 학생들의 행동이 의심스러웠던 A 씨는 관제센터에서 대기 근무하던 경찰관에게 상황을 알리고 계속 주시했다. 이들이 걷는 길의 앞뒤 방향 CCTV 화면을 36배까지 확대하는 순간 학생 한 명이 2단 옆차기로 60대 남성의 허리 쪽을 강하게 걷어차는 모습이 잡혔다. 지팡이를 짚고 오른쪽 다리를 절며 걷던 이 남성은 그대로 고꾸라졌고 둘은 옆길로 도망쳤다. 곧바로 관제센터에서 실시간 경찰서로 신고가 이뤄졌다. 현장으로 경찰차와 119응급차가 출동했다. 쓰러진 남성은 일어나지 못했다.
몇 분 후 두 학생은 CCTV에 자신들이 고스란히 찍히는 줄도 모르고 인근 집에서 점퍼를 걸치고 유유히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행인인 척하고 쓰러진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힐끗 쳐다보는 여유까지 부리며 주변을 누볐다. 하지만 이들은 줄곧 행적을 추적해온 경찰에게 범행 15분 만인 5시 5분 검거됐다.
크게 부상당한 것처럼 보였던 남성은 다행히 얼굴에 찰과상만 입었다. 도로 옆 주택 계단 모서리로 쓰러졌다면 머리를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세밀한 모니터링과 신속한 대처가 없었다면 묻지마 폭행 사건은 묻힐 뻔했다. ○ 매의 눈으로 범죄 사전 징후 포착
통합관제센터는 전국 시, 군 지자체에서 운영 중이다. 통합관제란 방범, 어린이 안전, 쓰레기 불법투기 적발, 교통, 재난 및 시설물 안전, 산불 감시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설치된 CCTV를 지자체 관제센터에서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2014년 2월부터 통합관제센터를 운영한 경산시는 시 교육청이 설치한 관내 초등학교 CCTV까지 확인하고 있다. 질 높은 모니터링에 따른 범죄 예방 실적이 좋아 서울 시내 통합관제센터 수준에 버금간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실제 최근 경찰과 협력을 통한 집중 관제로 노인 폭행과 절도 미수 피의자를 검거하는 데 기여한 모니터링 요원 3명이 지난달 13일 경산경찰서장 표창을 받았다. 이어 21일과 24일에도 감사장과 표창장을 받아 경산시는 전국 지자체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 첨단 정보기술을 CCTV관제와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플랫폼 구축도 추진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경산시 통합관제센터가 운영하는 CCTV는 6월 30일 기준 647개소 1822대. 이 중에는 경산경찰서가 운영하던 CCTV 8대도 포함돼 있다. 근무는 모니터링 요원 40명이 4개조 3교대로 한다. 오전 7시, 오후 3시, 오후 11시에 조별 교대가 이뤄진다. 한 조 10명이 동시에 1800여 개의 CCTV를 모니터링 한다. 경산경찰서는 소속 경찰관 3명을 관제센터로 파견해 3교대로 센터 업무 지원을 한다.
지난달 30일 찾아간 시의 ‘스마트시티 관제센터’. 모니터링 요원들이 각자의 책상 앞에 놓인 PC 2대의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맡은 구역의 CCTV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깐 시선을 돌린 사이 어떤 화면이 나타날지 몰라 근무하는 요원에게 취재를 위한 질문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모니터링 요원들의 시선은 ‘매의 눈’이다.
“한 요원이 180개 정도의 CCTV 화면을 실시간 분석합니다. PC 한 대에 9개씩 양쪽으로 18개 화면을 켜놓고 사전 범죄 징후 등을 파악하고, 다음 18개 화면을 관찰하는 식으로 10번을 돌려보길 반복합니다.”
정은표 경산시청 정보통신과(정보보호담당) 계장은 “한 곳만 비추는 고정식 CCTV와 10∼15초마다 방향이 바뀌는 회전식 CCTV 화면이 쉴 새 없이 모니터로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정 계장은 “27만 명가량인 경산시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앞으로 인구당 CCTV 대수를 111명당 1대 수준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3교대로 근무하지만 같은 화면을 계속 주시해야 하는 업무라 눈에 피로가 오고 손목이 뻣뻣해지기도 한다고 한 모니터링 요원은 털어놨다.
정 계장은 “작은 사고나 범죄 징후라도 세밀하게 감지해 막은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경산시 통합관제센터는 2014년 469건에서 지난해 4304건, 올해는 7월까지 5000건의 ‘이상 징후’를 발견해 경찰 등 관련 기관에 연락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실적’을 올렸다.
지난달 11일 새벽에는 영남대 앞 삼거리에서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를 훔치려는 젊은 남성들의 서성거리는 움직임을 포착해 절도를 시도하기 직전 경찰이 검거하도록 했다. 또 10대 청소년 세 명이 새벽에 주택가 승용차를 쳐다보는 상황을 유심히 관찰하고 경찰에 신고해 차량 금품 도난 사고를 막아냈다.
워낙 정밀하게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새벽 시간 범죄 취약 지역인 공원 벤치에 앉은 남성의 손목에 희미하게 수갑이 채워진 화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경찰이 출동하게 했다. 알고 보니 죄수 연기 연습을 하던 배우였다.
한 번은 초등학생이 학교 계단 난간에서 머리를 철제 봉 사이에 넣었다가 빠지지 않는 장면을 보고 바로 학교에 통보했다. 학교 교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학생 스스로 머리를 빼고 나왔지만 세심하게 안전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기록되고 있다.
○ 요주의 지역 ‘핫스폿’ 지정, 지능형 CCTV로 범죄 사각지대 없애
경산시에는 영남대 등 10개 대학이 있다. 외국 유학생들과 인근 진량읍 진량공단에 근무하는 중국인 근로자들이 계속 유입되면서 원룸 임대 가구가 크게 늘었다. 경산시는 이곳을 포함한 이른바 ‘핫스폿’ 지역을 설정해 심야(0∼4시) 시간대 모니터링을 더 강화했다. 인적이 드물거나 건물, 구조물들로 가려진 사각 지역 등 육안으로 관찰이 쉽지 않은 곳에는 사람의 비명 소리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포함된 지능형 CCTV가 설치돼 있다. 정 계장은 “10개 대학 주변에는 유흥가뿐만 아니라 원룸촌이 형성돼 있는데 2354가구나 된다. 젊은층과 외국인들, 취객들 사이에서 강력 범죄 등의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했다.
통합관제센터 모니터링 요원 이영자 씨는 “특히 원룸촌 같은 지역의 야간 모니터링은 집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과 주변을 동시에 놓치지 않고 봐야 하고, 다른 관제 요원과도 협조해 시간대별로도 360도 각도에서 반복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경산시의 한 공원에 설치된 CCTV의 기둥을 살펴보니 관제요원과 연락을 취해 스피커로 대화할 수 있는 비상호출 버튼이 꽤 아래쪽에 붙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쉽게 누를 수 있도록 1m 밑 높이로 설치된 것. 보이지 않는 작은 배려였다.
경산시는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매년 21억 원씩을 CCTV 설치 사업에 투자했다. 현재 1822대에서 내년에는 2000대로 늘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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