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원과 맞바꾼 특수학교 건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5일 03시 00분


장애아 부모들 무릎 호소 1년만에 강서구 서진학교 설립 합의했지만
추후 학교땅에 한방병원 추진 약속, “기피시설 인정한 셈… 나쁜 선례”
장애학생 부모들 5일 항의 집회, “김성태 의원 공약이 불씨” 지적도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탑산초교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 당시 장애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간청하며 무릎을 꿇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동아일보DB
지난해 9월 서울 강서구 탑산초교에서 열린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 당시 장애학생 부모들이 학교 설립을 간청하며 무릎을 꿇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동아일보DB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서진학교) 건립을 둘러싼 서울시교육청과 지역주민 간 갈등이 가까스로 봉합됐다. 지난해 9월 서진학교 건립을 간청하는 장애학생 부모들의 ‘무릎 호소’가 있은 지 1년 만이다. 하지만 시교육청이 학교 건립에 반대한 지역주민과 국회의원의 협조를 이끌어 내고자 이들의 요구사항을 대거 수용해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강서을이 지역구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손동호 강서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상대책위원장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을 소통과 협력을 통해 아름답게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합의에 따라 시교육청은 서진학교가 들어서는 옛 공진초등학교(2013년 폐교) 건물 일부를 주민복합문화시설로 조성하기로 했다. 서진학교에는 강서구에 사는 장애학생을 우선 배정하기로 했다. 내년 9월 개교하는 서진학교에는 지적장애 학생 140명이 다닐 예정이다. 공사는 이미 지난달 시작됐다. 서울에서 특수학교를 새로 짓는 건 17년 만이다.

지역주민들이 학교 건립에 협력하는 대신에 시교육청은 이들의 숙원사업인 ‘국립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하기로 했다. 시교육청은 “앞으로 학교 통폐합으로 학교 부지가 남을 경우 국립한방병원 건립에 최우선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국립한방병원 건립은 2016년 4월 총선 당시 김 원내대표의 선거 공약이다. 이때 지역주민들에게 약속한 병원 자리가 공진초 부지였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국립한방병원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주무부처 및 교육청과 협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1년 전 무릎 호소를 한 장애학생 부모들은 “나쁜 선례를 남겼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자폐성 장애 자녀를 둔 A 씨(51·여)는 “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하기로 한 게 마치 특수학교 건립에 대한 대가로 비칠 수 있다”며 “앞으로 특수학교를 더 지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주민들이 비슷한 요구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무릎을 꿇으면서까지 특수학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꿔보려 했는데, 오히려 이번 합의로 특수학교가 기피 시설이라는 선입견만 더 심어준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서진학교 건립에 힘써 온 이은자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장은 “시교육청은 이번 합의를 장애학생 부모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며 “시교육청이 왜 합의를 추진했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애학생 부모들은 5일 이번 합의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시교육청이 먼저 제안했다. 이를 두고 시교육청이 특수학교 건립을 위해 지역주민과 국회의원에게 굴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교육청 소유인 학교 용지는 법적으로 오로지 학교를 짓는 데만 쓸 수 있다. 어떤 학교를 세울지는 전적으로 교육감 권한이다. 애초에 합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적으로 불필요한 합의를 자청한 셈이다.

합의 주체가 김 원내대표인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 건립에 강하게 반대한 것은 김 원내대표의 공약대로 특수학교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이 들어설 것이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다. 김 원내대표의 공약이 특수학교 반대 여론의 불씨가 된 셈이다. 김 원내대표는 지난해 9월 무릎 호소가 있던 토론회에 참석해 특수학교 건립 반대 주장을 편 뒤 먼저 퇴장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지역민원#특수학교 건립#김성태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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