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이어진 준설토 매립공사… ‘저어새’ 자취 감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6일 03시 00분


인천 영종도 수하암 르포

홍소산 영종환경연합 대표가 4일 세계적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번식지였던 인천 영종도 수하암(선 안)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에 
300∼400마리 무리를 지어 있던 저어새가 4월 중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수하암에서 무리 지어 지내던 저어새의 2015년 4월
 모습(작은 사진).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영종환경연합 제공
홍소산 영종환경연합 대표가 4일 세계적 멸종위기종 저어새의 번식지였던 인천 영종도 수하암(선 안)을 가리키고 있다. 이곳에 300∼400마리 무리를 지어 있던 저어새가 4월 중순 이후 자취를 감췄다. 수하암에서 무리 지어 지내던 저어새의 2015년 4월 모습(작은 사진).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영종환경연합 제공
‘2017년 7월 26일 저어새 350마리 무리.’

‘2018년 3월 30일 저어새 20마리 내외 짝을 이뤄 번식 준비. 4월 15일 20∼30마리의 다른 저어새 무리 방문. 4월 18일 저어새 번식 포기.’(인천 영종도 수하암에 설치된 센서카메라 포착 장면)

인천 영종도 수하암을 번식지로 삼았던 세계적 멸종위기종 저어새가 올 4월 중순 이후 자취를 감춰 비상이 걸렸다. 인천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영종대교 근처에 있는 수하암은 매년 최소 300∼400마리의 저어새가 무리를 지어 찾아와 둥지를 틀고 부화해 새끼를 기르는 철새 서식지다. 저어새 보호를 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천 강화도 남단 갯벌에서 송도국제도시 주변 갯벌로 이어지는 저어새 주요 활동 무대의 중간 지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천항 항로 유지를 위해 바다 밑에서 퍼온 흙, 모래를 버리는 330만 m² 규모의 대단위 준설토 투기장(영종도 제2 준설토 투기장) 조성공사가 2013년 시작된 이후 저어새가 올해 처음 수하암에서 번식을 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준설토 매립을 주관하는 인천지방해양청과 문화재청, 인천시는 지난달 28일 조류 전문가와 합동회의를 열고 인공섬 조성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일 오전 바닷물을 막는 호안공사를 끝내고 준설토 매립이 진행 중인 영종도 제2 준설토 투기장.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들어서는 영종도 미단시티 앞바다 쪽의 호안블록에서 150m 떨어진 수하암은 텅 비어 있었다. 길이 70m, 폭 25m에 불과한 작은 갯바위인 수하암은 썰물 때라 몸체를 훤히 드러냈다. 밀물 때에도 바위 꼭대기까지 물이 차오르지 않아 저어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돌보던 곳이다. 지난해까지 수하암과 주변의 광활한 갯벌에 세계적으로 3000마리도 남아 있지 않다는 저어새뿐만 아니라 법정보호종인 알락꼬리도요새가 수백 마리씩 떼를 지어 날아왔었다. 이젠 철새들이 날갯짓하는 풍경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다 멀리 갈매기 등 텃새들만 몇 마리씩 노닐고 있었다.

2013년 초부터 인천해양수산청 주도로 매립공사가 시작되면서 3, 4년 정도 잘 버티던 저어새는 결국 쫓겨났다. 공사장 화물트럭과 사진 촬영을 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지난해부터 환경단체가 설치한 감시카메라를 통해 불안에 떠는 저어새 모습이 심심찮게 목격됐다. 지난해 6월 한 주민이 썰물 때 수하암까지 다가와 저어새 알을 훔쳐가는 장면이 포착돼 환경단체 신고로 벌금을 물기도 했다. 저어새가 가장 두려워하는 들쥐까지 잠입하게 되자 4월 19일 이후 수하암에서 저어새를 발견할 수 없게 됐다.

홍소산 영종환경연합 대표(57)는 2016년 초부터 생태계 파괴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기관에 현장 사진을 첨부한 민원 공문을 수차례 보냈다. 홍 대표는 “행정기관의 안이한 대처로 저어새가 낙원처럼 여기던 수하암을 버리고 떠나버렸다”고 말했다.

인천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저어새가 갑자기 사라진 원인을 조류 전문가와 함께 파악하고 있다”며 “저어새가 남쪽에서 동면을 하고 다시 한국을 찾아오는 내년 3월 이전 호안블록에서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먼저 조성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영종도#수하암#저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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