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서울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한 ‘공시생’ 김모 씨(25·여). 올해 세 번째 시험을 위해 작년보다 마음을 더 다잡고 준비에 매달렸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 뒤 부모님에게서 용돈을 받지 않으려고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학원에서 조교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하지만 석 달 전 치른 9급 지방직 공무원 시험 결과는 또 불합격이었다. 최근 통보를 받은 김 씨는 공시생을 그만두기로 했다. 질려버린 ‘고시식당’ 백반과 편의점 샌드위치를 언제까지 먹어야 할지….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노량진 골목에 수험생들이 그득그득했다. 수험생활을 오래 한 이들은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공무원 시험도 볼수록 ‘중독’되는 것 같았다. 포기할 수 없는 나이가 되기 전에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현재 김 씨는 컴퓨터활용능력검정시험과 토익시험 등 취업에 필요한 시험을 준비 중이다. 김 씨는 “저는 아직 취업에 치명적인 나이가 아니고, 전공도 취업 연계가 잘되는 편이라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일반 인문계 공시생들은 정말 그만두고 싶은데도 엄두가 안 난다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청년실업률 지표가 최악을 기록하며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청년이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서울지역 공시생 10명 중 3명은 수험을 포기하고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출연기관인 서울산업진흥원(SBA)이 7, 8월 온·오프라인 방식으로 서울 종로, 노량진, 강남 등 공무원시험 준비생 1000명을 대상으로 진로변경 희망 수요를 설문조사한 결과다.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기업 분야로 진로를 바꿀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0.6%가 ‘그렇다’고 답했다. 32.8%가 ‘보통이다’, 36.6%가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취업으로 진로를 돌리겠다고 답한 응답자 중 48.6%가 5년 이상 시험을 준비한 이들이었으며 ‘2∼5년’(34.2%), ‘2년 미만’(25.6%)으로 시험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진로 변경 의향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로는 ‘희박한 합격 가능성’(50.5%)을 꼽았다. ‘수험 준비의 경제적 부담’(26.7%)과 ‘새로운 분야 도전 희망’(14.2%)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자신감은 매우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 응답자의 37.8%가 진로 변경 시 자신의 경쟁력이 낮다고 답했다. 이때 경쟁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기업 실무경험 부족’(37.4%)이라고 가장 많이 답했으며 그 다음으로 ‘자신감 및 도전의식 부족’(25.4%)과 ‘기업 직무지식 부족’(19.3%)을 들었다.
“공무원 시험에 실패하는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낙오되는 걸 막아주는 교육이 절실해요.”
10년간 ‘고시 낭인’이었다는 손모 씨(37·여)가 말했다. 손 씨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은 공무원 시험, 4년간은 노무사 자격증 시험에 매달렸다. 불합격이 거듭될수록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지’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취업을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나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정부 취업 프로그램 센터에서 받은 집단 심리 상담이 손 씨의 삶을 바꿨다. “10년 전 기회가 있을 때 ‘대학 가기엔 너무 늦었다’고 포기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는 60대 여성의 이야기를 들은 후 고민 끝에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손 씨는 “심리적으로, 실질적으로 공시생들을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산업진흥원은 향후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진로 변경을 희망하는 공시생들의 취업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열 예정이다. 올해안에 개설을 목표로 공시생들을 대상으로 기업 최고경영자(CEO) 특강과 기업 미니 인턴을 통한 진로 탐색, 직무 교육 등을 준비하고 있다. 진흥원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의 일자리 미스매치까지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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