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단원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66·사진)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명 인사 중 실형이 선고된 첫 사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19일 이 전 감독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기관 10년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 전 감독이 2010년∼2016년 12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극단 단원 8명을 18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연희단거리패 창단자인 이 전 감독이 배우를 고를 수 있는 극단 운영상의 절대적 권한을 이용해 단원들에게 ‘위력’을 행사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이 전 감독은 연극을 하겠다는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권력에 복종할 수밖에 없던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했다. 그러나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미투’ 폭로로 자신을 악인으로 몰고 간다며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전 감독이 2016년 12월 ‘발성지도’를 한다며 극단 단원 A 씨를 유사 강간해 우울증에 걸리게 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미투 운동에 편승한 피해자들의 진정성이 의심스럽다’는 이 전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이 당한 피해를 드러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엔 상당한 고통과 심리적 부담이 따르게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다만, 극단 단원 4명을 7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에 대해선 피해자들이 법정 증언을 하지 않거나 이 전 감독의 지도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정에 갈색 수의를 입고 출석한 이 전 감독은 21분간 이어진 선고 내내 고개를 들고 재판부를 쳐다봤다. 피해자들의 지인으로 보이는 10여 명은 방청석에서 서로 손을 잡거나 눈물을 흘렸다. ‘이윤택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미투 운동 이후 최초의 실형 선고이며 피해자가 ‘노(No)’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도 의사에 반한 것은 성폭력임을 인정하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는 수행비서 김지은 씨(33)를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가 지난달 14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지현 검사(45)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은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52)은 성추행 공소시효(7년)가 지나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로만 불구속 기소돼 1심이 진행 중이다. 검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이 기소한 전직 검사 중에서 아직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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