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의 항소심이 조만간 서울고법에서 진행된다. 안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과 성관계 사이의 인과를 인정하지 않은 1심이 뒤집힐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현재 안 전 지사의 항소심 사건은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강승준)에 배당된 상태다. 성폭력사건 전담부서인 형사8부는 “1심 판결은 법리·사실·심리 모두 잘못됐다”는 검찰 측의 항소 이유를 두고 다시 한번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강승준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의붓손녀를 수년간 성폭행하고 출산까지 하게 한 50대에 1심보다 5년 더 무거운 징역 25년형을 선고해 언론에 관심을 받은 인물이다. 당시 강 판사는 피해자의 고통을 설명하는 판결문 내용을 읽다가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됐다. 그가 심리하는 안 전 지사의 첫 항소심 재판기일은 늦어도 10월 초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0가지 혐의 모두 무죄가 나온 안 전 지사의 경우 새로운 증거나 정황이 나오지 않으면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히기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
1심은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 김지은씨(33)의 진술을 신뢰하기 힘들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의 진술을 믿지 못하는 이유로는 김씨와 안 전 지사와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이 대부분 삭제되고 다른 증인들과의 진술·증언이 불일치하는 점을 문제 삼았다.
검찰은 다툼 쟁점인 ‘위력 행사’와 ‘진술 신빙성’ 중 후자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항소심 전략을 짤 것으로 보인다.
김씨의 진술 신빙성을 담보하는 증거를 보충하는 것이 항소심 승부에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검찰이 사실심인 항소심에서 사실관계를 다툰 후, 법률심인 대법원에서 ‘위력’에 대한 폭넓은 법리해석을 끌어내는 장기전을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항소심 재판부가 1심과 같이 범행 이후 피해자가 보인 행동을 범죄 인정에 불리한 요소로 삼을지도 이목이 집중된다.
1심 재판부는 김씨가 “피고인이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하려했다” “지인과의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등의 사정을 강조했다.
가상의 피해자상을 설정한 뒤 그 기준에서 맞지 않다는 이유로 업무상 위력과 성관계 사이 인과를 인정하지 않은 대목이다. 이는 재판부가 가해자의 시각에서 ‘진짜 피해자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만 과도하게 고민했다는 비판을 불렀다. 일각에선 1심 판결에 대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재판했다’고도 지적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피해자다움’이 ‘증명’돼 유죄가 인정된 사례가 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기소된 김문환 전 주 에티오피아 대사는 최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와 달리 김 전 대사의 혐의가 인정된 것은 피해자의 범행 이후 태도와 진술 신빙성이 범죄 입증에 유리한 증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 이후) 업무 수행을 제대로 못해서 임기를 채 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피해자가 당초 피해 사실을 숨기려 한 것을 보면 허위 진술을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등의 사정을 전하며 김 전 대사에 실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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