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외국인 노숙 환자에 병원들 ‘골머리’

  • 뉴시스
  • 입력 2018년 9월 28일 15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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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공의료원에는 지난달 중국 국적의 40대 노숙인 J씨가 머리 출혈 등으로 치료를 받았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60대 노숙인 B씨도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을 상태로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2일에는 대만 국적의 60대 노숙인 W씨가 구급차에 실려 와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현재 그는 폐암 검사 등을 진행 중이다.

외국인 노숙 환자 문제로 최근 공공의료원 등 서울시내 대형 병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응급 환자의 경우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사람은 응급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고, 응급 의료 종사자는 응급 환자를 발견하는 즉시 치료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응급 치료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더라도 병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환자가 비용을 내지 못할 경우 병원 손실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응급의료비를 국가가 대신 내주고 나중에 환자가 국가에 상환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비 대불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한 정부 측과 일선 병원 측의 평가는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외국인 노숙 환자에 대해 응급 치료를 하는 경우 대불제도를 이용하면 병원은 손실을 보지 않는다”며 “병원이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병원협회 관계자는 “복지부는 대불제도가 있으니까 이용하면 된다는 원칙만 강조하고 있다”며 “인적사항을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은 데다, 심사가 까다롭기 때문에 대불제도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외국인 노숙 환자들이 응급치료가 아닌 일반치료를 받을 때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한국 국적 노숙인의 경우 노숙인 의료급여를 통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을 부담하지만 외국인 노숙인의 경우 치료가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공공의료원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노숙 환자가 응급실로 온 경우 응급치료를 하고 난 뒤 입원치료를 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럴 경우 고스란히 병원 손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병원협회 관계자도 “대불제도는 응급의료비에 대해서만 적용된다”며 “응급의료비와 일반치료비를 무 자르듯이 정확히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손실난 부분에 대해 대불 제도로 100% 상환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서울 시내 거주 외국인 노숙인은 28일 현재 14명 정도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부터 거리 상담 등을 통해 외국인 노숙인을 파악하고 있다.

서울시가 밝힌 14명 역시 거리 상담을 통해 드러난 최소한의 숫자일 뿐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외국인 노숙인에 대한 실태 파악은 지자체가 필요에 따라 개별적으로 하고 있을 뿐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은 전무하다.

이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인데 강제추방에 대한 우려와 언어 문제 때문에 노숙인을 위한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거리 생활을 하면서 다치거나 지병이 악화되는 경우 구급차를 통하거나 자발적으로 공공의료원을 찾는다고 한다. 노숙인이 아닌 경우에도 불법체류 신분이 노출돼 추방될 것을 우려해 노숙인이라고 속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국인 노숙인의 경우 응급 환자일 때는 치료를 받을 수 있겠지만 암, 간경화 등 만성적인 지병은 응급치료 범위가 아니라서 치료를 받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런 경우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협조를 구해서 치료를 하는 방식으로 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외국인 노숙인들 중에는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찾는 이들이 있다.

핀란드 국적의 40대 노숙인 H씨는 한 달에 2~3번씩 술에 취해 서울시내 한 공공의료원 응급실을 찾는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고 3~4시간씩 자다가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이 병원 의료진들과 구급대원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고 한다. 이렇게 쌓인 미수금이 통틀어 300만원을 넘는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H씨를 치료하느라 다른 환자들이 제 때 치료받지 못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병원에선 궁여지책으로 외국인 노숙인들이 속한 해당 국가의 대사관에 연락을 취해 비용 상환을 하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일부 국가 대사관은 비용을 지불하지만, 대부분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내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치료 받는 것도 비용적 부담이 큰데 내가 낸 세금으로 외국인 노숙 환자 암치료까지 하는 것은 과한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이 늘어나면 이런 비용이 점점 증가할 수 밖에 없어 공론화와 대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단지가 위치한 지방 국립대 병원이나 지방 의료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막무가내 행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방 국립대 병원의 한 관계자는 “돈을 벌려고 온 노동자들이 진료비에 돈을 써버리면 집에 부쳐 줄 돈이 없다면서 치료를 받고 나서 막무가내로 돈이 없다고 떼를 쓰거나 몰래 도망을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며 “몇 십 만원을 가지고 소송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치료를 안해줄 수도 없어서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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