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사 이소민 씨(29·여)는 스마트폰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가 유행했던 지난해 겨울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하굣길 안전지도를 나가면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이 걷는 동안에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 화면에 뜨는 캐릭터에게 가까이 다가가 잡겠다는 일념에 주변을 살피지 않은 채 차도로 불쑥 뛰어드는 아찔한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의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지자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별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 방지 교육’을 실시했다. 이 씨는 “요즘엔 유튜브 등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게 인기를 모으면서 ‘초딩 스몸비’가 사라지지 않는 게 교육현장의 골칫거리”라고 말했다. ● 스마트폰 사용 2시간 넘으면 사고위험 5.8배
14일 오후 2시경 서울 송파구 신가초등학교에서 하교하던 김모 군(11)은 정문을 나서면서 휴대전화에 눈을 고정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왕복 4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김 군은 음악에 따라 박자를 맞추는 휴대전화 게임을 하며 걸었다. ‘차에 부딪힐지도 모르는데 무섭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학교나 학원에서는 휴대전화를 못 쓰니까 이동할 때 (게임을)한다”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이날 김 군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넌 초등학생 8명 가운데 3명이 통화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사고는 지난해 177건으로 2015년의 약 1.5배 수준으로 늘었다. 2014년 5월 서울 5개 초등학교 어린이 341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스마트폰을 2시간 이상 쓰는 초등학생의 교통사고 위험이 그렇지 않은 초등학생보다 5.8배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린이의 신체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 스몸비보다 ‘초딩 스몸비’가 더 위험하다. 12세 미만 어린이는 뇌가 다 발달하지 않아 스마트폰에 집중할 경우 다른 외부 자극을 감지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동안 주변의 다른 보행자, 차량 등을 인지하는 게 어른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10세 미만 어린이의 시각과 청각, 인지력은 65세 이상 고령 보행자보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린이는 키가 작아 볼 수 있는 범위가 어른보다 좁고, 운전자가 차량 바로 앞에 있는 어린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또 어린이는 성인보다 쉽게 도로에 뛰어든다. 안전보건공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이 보행자 사고의 70%는 이면도로에 갑자기 뛰어들어 발생한다.
같은 사고라도 어린이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2016년 차에 부딪혀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38.5%였다. 하지만 교통사고로 숨진 12세 이하 어린이 가운데 차와 충돌해 숨진 인원의 비율은 50.7%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64.8%로 늘었다. 무의식중에 도로 한복판으로 나오는 어린이의 위험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원영아 녹색어머니중앙회 회장은 “어린이들이 스마트폰을 볼 때는 이어폰을 끼지 않았는데도 부르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할 만큼 스마트폰 게임이나 동영상에 집중한다”며 “교통 지도를 하다보면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다시피 하다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드는 아찔한 상황이 수시로 벌어진다”고 말했다.
● 세계는 ‘스몸비’와 전쟁 중
미국 비영리재단 ‘세이프키드월드와이드’가 2014년 19세 이하 어린이 및 청소년의 보행 중 사망사고 원인을 조사한 결과 사망 사고의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과 관련된 집중력 분산 때문으로 밝혀졌다. 영국에서는 2011년 한 보험회사의 조사 결과 어린이 보행자 사망률이 11, 12세에서 가장 높았다. 첫 휴대전화를 갖게 되는 나이가 보통 이 때이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후 영국 정부는 신입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달 간 안전 교육을 매주 2시간씩 받도록 했다. 네덜란드는 교원 양성 과정에 교통안전 강좌를 개설해 운영 중이다. 반면 한국은 교원 양성 과정에 교통안전 교육이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올 5월 청소년 스마트폰 중독 예방 앱 ‘사이버안심존’에 스몸비 방지 기능을 넣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5~7걸음 걸으면 자동으로 화면이 잠긴다. 다시 사용하려면 잠금 해제 버튼을 눌러야한다. 해제한 뒤에도 걸으면 다시 화면이 잠긴다.
하지만 좋은 기능에도 불구하고 출시 넉 달이 지났는데도 앱을 내려받은 수는 10만여 건에 불과하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남지은 씨(가명·43)는 “사춘기에 접어들어 친구들과 하루 종일 메시지를 하는 아이에게 스몸비 방지 앱을 깔면 지워줄 때까지 싸울 것 같다”며 난감해 했다.
박수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어린이의 스마트폰 사용이 늘어난 추세에 맞는 안전교육이 필요하다”며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에서는 보행 중 스마트폰 이용에 따른 위험을 줄이도록 경고 표지판, 스마트폰 차단 앱 등을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스몸비 막는 ‘노란 발자국’ 효과 톡톡 ▼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발생하는 교통안전 문제는 성인과 청소년 ‘스몸비’에게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해외에서는 스마트폰에 정신을 집중한 채 걷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지거나, 맨홀에 빠지는 안전사고가 빈발했다. 국내에서도 다른 행인과 부딪히면서 벌어진 사소한 말다툼이 큰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이 도심뿐 아니라 서울 곳곳에서 어른, 어린이 가릴 것 없이 확산되면서 적극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먼저 2016년 서울광장, 연세대 앞, 홍익대 앞, 강남역, 잠실역 등 시내 5개 도심지에 설치했던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경고 안내물을 내년까지 25개 자치구, 총 400여 곳에 보급해 설치할 예정이다. 이미 설치돼 있던 스티커 형태의 안내물은 내구성이 약해 모두 떼어내고 내구성이 강화된 플라스틱 안내물을 보도블럭에 부착했다.
청소년 안전을 위한 대책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올해 시내 30여 개 청소년 수련시설 주변 횡단보도 앞에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노란 발자국’을 새로 설치했다. 횡단보도에서 약 1m 떨어진 보도 위에 눈에 잘 띄는 노란색으로 경고 문구를 표시했다. 이는 스마트폰을 보느라 바닥을 보는 일이 많은 청소년들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신호를 기다리도록 유도한다. 무의식중에 자신도 모르게 차가 달리는 도로로 나가는 일을 막고자 기획했다.
2016년 경기남부경찰청이 처음 시행한 노란 발자국은 당초 어린이가 안전하게 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노란 발자국을 설치한 지점의 교통사고가 53%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효과가 확인되면서 청소년 보행 안전을 위해 서울시도 도입했다.
또 서울시의회는 올 3월 지방의회 중 최초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의 위험을 알리고,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 책임을 명시한 조례안을 통과했다. 조례안에는 ‘모든 시민은 횡단보도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조항이 새로 담겼다. 서울 시민의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이다. 조례는 시민에게 별도의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행 중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사항’을 시장의 책무로 규정해 서울시가 관련 사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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