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 씨는 2014년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후 운전대를 잡지 않은 이른바 ‘장롱면허’ 소유자였다. A 씨는 올해 8월 초 제주도에 여행을 가서 차를 빌렸다.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운행하던 A 씨는 ‘잠시 후 좌회전’이라는 안내 음성을 듣고는 옆 차로를 확인하지 않은 채 핸들을 왼쪽으로 돌렸고, 왼쪽 차로에서 오던 차량과 그대로 부딪쳤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 초보 운전 ‘드라이빙 성지’가 된 제주도
제주도에서 렌터카를 이용한 관광이 보편화되면서 초보 운전자가 제주도를 ‘장롱면허 탈출’의 장으로 여기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는 ‘초보 운전자이지만 제주도에서 렌터카로 운전을 했다’고 자랑하는 글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B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제주도에서 장롱면허 탈출 팁’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할 만하니 초보 운전자도 도전해 보라. 나는 시속 108km까지 달렸다”고 썼다. C 씨는 “면허를 따고 운전한 게 1∼2년 전에 5차례뿐이고, 제주도에 오기 전날에야 유튜브로 주차하는 방법 동영상을 검색했다”고 밝혔다.
제주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제주도민이 아닌 운전자가 제주에서 일으킨 렌터카 사고 가운데 면허 취득 5년 이하인 경우가 35.4%였다. 특히 운전 경력이 짧은 10대와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46.6%로 약 절반을 차지했다. 지난달 2일에도 김모 씨(25·여)가 제주 한림읍의 한 관광지에서 렌터카를 몰던 중 두 살배기 여자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제주도 관계자는 “비수기 평일에 도내 렌터카 가격이 하루 5000∼7000원 수준(보험료 제외)으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싸다 보니 10대나 20대가 차를 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고는 관광을 하면서 전후방 주시를 제대로 안 하거나 여행 기분으로 들떠 과속을 하면서 일어난다. 제주연구원에 따르면 외부에서 온 렌터카 운전자들의 사고 원인 중 △전방 주시 태만 71.6% △운전 미숙 등 심리 요인에 의한 판단 잘못 8.5% △차량 조작 잘못 4.7% 등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주말 제주도에 다녀온 직장인 유모 씨(29)는 “갓 돌이 지난 애를 차에 태우고 운전하는데 3차로 도로의 2차로에서 우회전을 하거나 급정거를 하는 렌터카가 많아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 현지 주민들 ‘렌터카 공포증’ 호소
제주시 한림읍에 사는 강모 씨(51)는 급정차한 렌터카를 피하다가 집 담벼락에 차가 부딪히는 사고를 겪었다. 강 씨는 “초보 운전자가 모는 렌터카가 많다 보니 관광지 근처 도로를 피해 일부러 현지인만 아는 도로로 우회해서 간다”고 푸념했다. 같은 지역 주민 김석식 씨(58)는 “번호판 앞자리에 ‘하’ ‘허’ ‘호’가 쓰인 렌터카를 보면 긴장하게 돼 방어운전 태세를 갖춘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렌터카 업계에 자율적으로 감차를 유도해 3만3388대(9월 21일 기준)인 렌터카를 내년 6월 말까지 2만5000대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인구 팽창과 관광객 증가로 도내 차량이 급증하는 것을 막아 교통 혼잡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지만 렌터카 숫자가 줄면 사고 건수도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렌터카 업계 관계자는 “렌터카 업체의 차량 가동률이 높지 않아 차량 수만 줄여서는 사고 감소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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