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four)에버육아]<19>하루라도 미루면 큰일…엄마는 아프지도 말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일 1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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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몸이 많이 아팠다.

‘젖몸살’이었다. 수유기간 가슴에 문제가 생기거나 아기가 잘 먹지 않으면 유선이 막히면서 젖몸살에 걸린다. 가슴이 딱딱해지고 열이 나고 온몸이 마치 몸살에 걸린 듯 욱신거려서 젖몸살이라 부른다. 심하면 막힌 부위가 유선(乳腺)염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게도 유선염이 생기고 말았다.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 싶었는데 얼마 안돼 피부가 붓고 후끈후끈 열이 나기 시작했다. 찌릿하게 아프고 쓰린 느낌이 딱 봐도 염증이 생긴 것 같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가슴 전체가 얼얼했고 곧 등까지 찌릿찌릿 아파졌다. 온몸에 열도 올랐다.

다자녀 엄마라면 각종 육아 관련 질환에 통달했을 것 같지만, 정작 나는 건강체질이라 육아를 하며 병을 앓아본 일이 거의 없다. 세 아이 수유를 했건만 유선염에 걸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구나 보통 젖몸살이나 유선염은 모유량이 많거나 아기에게 직접 수유하지 않고 유축기를 이용해 모유를 빼는 초산모가 걸릴 확률이 높다. 나는 모유량도 많지 않고 늘 아기에게 직수(直授)했다. 초산모이긴커녕 무려 넷째 산모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유선염이라니….

우물쭈물하는 새 저녁이 되어 병원은 다음날 가보기로 했다. 어차피 당장 네 아이를 두고 응급실을 가기도 어려웠다. 하룻밤만 버티면 아이 셋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한층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다행히 남편이 있는 날이라 갓난아기는 남편에게 맡겼다. 하지만 큰 애들까지 맡길 손은 부족했다. 저녁식사까지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해결해주셨지만, 문제는 돌보미 선생님이 퇴근한 이후였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어야 하고 목욕도 해야 하고 잠도 자야 했다. 이들 중 영유아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하필 다음날 첫째와 둘째의 소풍날이라 이런저런 준비물까지 필요했다. 엄마가 아픈 걸 아는지 모르는지 두 딸은 천연덕스럽게 다가와 “엄마, 내일 우리 소풍인 거 알죠? 맛있는 간식 싸주셔야 해요”라고 했다.

아차, 간식을 못 샀다. 큰 애 두 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은 부모에게 ‘소풍 도시락의 짐’을 지우지 않는 대신 식사 후 아이들끼리 나눠먹을 간식을 사오게끔 했다. 처음에 멋모르고 과일을 싸 보냈다가 물정 모르는 엄마가 되고 말았다. “친구들은 모두 아기곰젤리나 새우과자 같은 걸 사와서 나눠먹는데 내 간식만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엄마표 도시락 대신 간식이 새로운 자랑거리가 되는 모양이었다.

이후 소풍 전날이면 꼭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 간식을 샀다. 이날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면 의견을 물어 간식을 사올 참이었는데 예기치 않게 몸이 아파 준비를 하지 못했다.

아이들 체육복과 수저통도 챙겨야 하는데….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해야 할 집안일도 산더미 같았다. 아이들 셋이 먹은 저녁 그릇 설거지, 여기저기 던져진 장난감 정리, 청소, 빨래도 해야 했다. 매일 저녁 반복되는 ‘엄마의 일’이었다.

“하루쯤 안 하면 되지” 할 수 있지만 그건 다자녀 집 사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아이가 넷인 집에선 설거지나 빨래가 하루라도 밀리면 다음날 처리해야 할 일이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당장 막내를 돌보고 있거니와 아이스크림가게놀이 장난감은 어디 넣어야 하는지, 갓난아기 빨래와 큰애들 빨래는 어떻게 달리 해야 하는지 남편은 몰랐다. 그걸 일일이 설명하는 품이 더 들 것 같았다.

이렇게 속은 답답한데 몸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건강체질에 웬만한 통증은 잘 견디는 편이라고 자부했지만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특히 부은 가슴으로 수유를 할 때면 고통을 참느라 진이 빠졌다. 결국 늘 쓰는 ‘찬스’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엄마, 오늘 밤 큰 애들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친정엄마에게 연락했다.

아픈 엄마가 결국 도움을 청할 곳이 또 (친정)엄마 뿐이라니 서글픈 일이었지만 어쩌랴. 한데 엄마도 다음날 새벽 일정 때문에 일찍 돌아가셔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큰 애들 3명을 재우러 들어가면 밤새 갓난아기 수유와 뒤치다꺼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된단 뜻이다. 온몸에 오한이 나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시릴 정도인데 아기를 돌보는 게 가능할까. 그렇다고 남편에게 갓난아기를 어르면서 아이 셋을 재워 달라 할 수도 없고…. ‘엄마는 앓아누울 여유조차 허용되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면 친정엄마도 앓아누워 계신 걸 본 기억이 없는 듯하다. 엄마도 사람인데 아프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아파도 움직여야 했던 거다. 딱 한 번 수술 때문에 입원해 하루 누워계신 걸 본적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도 수술을 미루고 미루다가 나와 내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자 하신 것이라고 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엄마는 마음대로 앓아누울 수도 없다는 걸. 엄마의 자리는 비우기엔 너무 크다. 나는 그동안 내가 비교적 아이들을 풀어주고 손을 많이 대지 않아 ‘방임형 엄마’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프고 보니 내가 방임해두고 있는 건 하나도 없었다. 큰일부터 표 나지 않는 작은 일까지 육아 구석구석에 내 손이 닿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결국 아픈 몸으로 아기를 어르고 수유하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찍 병원을 찾아 며칠분의 약을 받아왔다. ‘최대한 빨리 낫겠다’는 필사적 각오를 한 덕인지 다행히 염증이 사흘 만에 가라앉았다.

언젠가 회사 선배가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건강해야 해. 부모가 되고 보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더라고.” 정말 그랬다. 내 건강 증진의 목적이 육아라니 조금 씁쓸하지만 그래도 어쩌랴. 아이들 덕에 건강에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쓰게 된다면 나쁠 건 없지 않겠나.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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