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1987년 부랑인 선도 명목, 무고한 사람들 마구잡이 강제노역
학대-폭행 등 인권유린 자행 의혹
유가족 모임 10개 요구사항 수용, 피해 생존자 실태조사 등 벌이기로
부산시가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 작업에 나섰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당시 정부가 부랑인 수용 인원에 따라 보조금을 주기로 하자 이를 타내기 위해 마구잡이로 수용자를 늘려 무고한 사람들을 불법으로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킨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학대, 폭행, 암매장 등 인권 유린이 자행됐다는 생존자 폭로가 이어졌다.
부산시는 지난달 28일 서울본부 회의실에서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실종자 유가족 모임(피해생존자모임) 대표들을 만나 11개 요구 사항 중 10개 사항을 수용키로 했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부산에 흩어져 있는 사건 관련 자료 수집과 피해 생존자들의 실태 조사, 상담 창구 개설 및 회의, 트라우마 상담, 자료 보관 및 열람 등을 할 수 있는 공간 제공,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리는 인권교육 실시, 정부와 여당에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 촉구 등이다.
시는 법적 한계가 있는 형제복지원 매각 부지 환수를 제외한 10개 사항 가운데 즉각 실행할 수 있는 조항부터 시차를 두고 풀어 나갈 방침이다. 시 관계자는 “형제복지원의 인권 유린 사건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실무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며 “5일 부산시민의 날 행사에 피해 생존자들을 초청해 시민과 함께 위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양측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피해생존자모임은 지난달 16일 오거돈 부산시장의 기자회견에 참석해 11개 요구 사항을 처음으로 밝혔다. 당시 오 시장은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해 시민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사과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으로 부산시장이 피해자에게 공식으로 사과한 것은 1987년 사건이 불거진 이후 31년 만이다.
지금까지 집계된 공식 사망자만 513명에 달한다. 당시 ‘부랑인’을 감금한 근거는 부랑인 신고·단속·수용·보호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인 내무부 훈령 제410호다. 검찰은 1987년 1월 박인근 형제복지원장 등에 대한 수사를 벌여 박 원장을 특수감금과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대법원은 내무부 훈령에 따른 수용이었다며 특수감금 혐의는 무죄, 업무상 횡령죄만 유죄로 판단했고 박 원장은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형제복지원 법인은 2014년 청산됐다.
피해자들은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등에서 농성을 벌였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와 전국 사회복지 관련 단체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사건 진상 규명이 다시 공론화됐다.
지난달 13일 대검 검찰개혁위원회는 이 사건 무죄 판결의 유일한 근거가 됐던 내무부 훈령이 명백한 위헌·위법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고 검찰총장에게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권고했다. 비상상고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형사사건에서 법령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검찰총장이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며 대법원에 직접 상고하는 것이다. 대검 개혁위원회가 박 원장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판결이 잘못됐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건의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형제복지원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다시 법안을 발의했지만 계류 중이다. 오 시장은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의 핵심은 특별법 제정”이라며 “부산시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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