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출산한 최모 씨(27)는 최근 새 도로교통법이 시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개정된 법에 따르면 앞으로는 택시에서도 6세 미만 영유아는 반드시 카시트를 써야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택시를 타는 게 불안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항상 카시트를 휴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최 씨는 “기저귀 분유 물티슈 등 짐이 한 보따리인데 카시트까지 들고 다니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안전도 중요하지만 택시를 안 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 차량 탑승 중 어린이 사상자 연 1만 명
9월 28일 개정 도로교통법이 시행된 지 일주일이 됐다. 시행 첫날부터 가장 큰 논란을 빚은 것이 ‘6세 미만 영유아 탑승 시 전 차량 카시트 의무’ 사항이었다. “택시들이 아이가 있는 가족의 승차를 거부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애가 셋이면 부모는 트렁크에 타란 말이냐” 등의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고, 9월 28∼29일에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카시트 의무화 항의 글이 50여 개 올라왔다. 이에 경찰청은 29일 “보급률이 낮다는 것을 감안해 카시트 사용 단속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카시트 의무 사용을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다. 본보가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지난해 차량 탑승 중 발생한 사고로 다친 어린이는 9344명이었다. 그중 19명이 사망했다. 어린이 교통사고 부상자는 2015년(1만339명), 2016년(9830명) 등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가장 많은 수준이다.
이 가운데 택시 관련 교통사고로 다치는 어린이도 매년 700명가량 발생했다. 택시 탑승 중 사고나 다른 차에 탑승 중 택시와의 충돌로 다친 어린이는 2015년 739명, 2016년 684명이었다. 지난해에는 660명으로 전체 차량 탑승 사고 중 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카시트 사용률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자가용에서 유아용 카시트 사용률은 40.4%(2015년 기준)였다. 스웨덴과 오스트리아는 97%, 뉴질랜드는 93%에 달했다.
○ 국가가 나서 보급해야
해외에서도 사업용 차량이 카시트를 구비해야 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규정은 엇갈린다. 캐나다는 일부 주를 제외하고는 택시에 카시트를 구비해야 한다. 스웨덴은 ‘단거리 이동 시’에 한해 카시트 장착을 하지 않아도 되고, 영국은 택시에 카시트 장착 의무가 없다. 하지만 이들 선진국은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의 절반도 안 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카시트의 필요성이 한층 높다.
허억 어린이교통안전연구소 소장은 “택시에서 아이를 안고 타면 사고 시 아이가 어른의 에어백이 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면서 “자가용은 즉시 단속을 시작하고 택시 등 사업용 차량은 단계적으로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속을 실시하는 것 자체가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통 관련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카시트를 구비한 택시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미국식 모델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카시트를 구비한 업체의 콜택시를 골라서 부를 수 있다. 허 소장은 “저비용 카시트를 국가가 나서서 사업용 차량에 보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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