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했던 아들, 의롭게 보내주고 싶어… 장기기증 생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03시 00분


‘만취 BMW’ 피해자 부친의 눈물

지난달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음주운전 피해자 윤창호 씨. 윤 씨는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에서 만취한 BMW 운전자의 차에 치인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호 씨 지인 제공
지난달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음주운전 피해자 윤창호 씨. 윤 씨는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에서 만취한 BMW 운전자의 차에 치인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호 씨 지인 제공
“아들의 마지막이 조금이나마 의로웠으면 합니다. 창호의 장기 기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만취한 BMW 운전자의 차량에 치여 사경을 헤매는 윤창호 씨(22)의 아버지 윤기현 씨(52)의 쉰 목소리는 아들 이름을 말할 때마다 가늘게 떨렸다. 창호 씨는 지난달 25일 사고 이후 4일로 열흘째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병상에 누워 있다.

의료진이 3일 창호 씨에 대해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졌다고 판정한 뒤 가족들은 장기 기증 여부를 상의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버지 윤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아내는 하염없이 울고 고3인 딸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본다. 이런 고통을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 “존경심이 들 만큼 반듯했던 아들”

윤 씨는 검사의 꿈을 키워 왔던 아들에 대해 “너무 야무지고 원대한 꿈을 갖고 있어 부모가 살아가는 원천이었다”며 “자식이었지만 존경심이 들 정도로 반듯해 아들 앞에서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반듯했던 청년의 꿈은 음주운전 차량 때문에 산산이 조각났다. 경찰 조사 결과 보험설계사인 가해 운전자 박모 씨(26)는 지인들과 보드카 2병, 위스키 등을 마신 뒤 혈중알코올농도 0.134% 상태에서 300m가량을 운전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든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가 횡단보도 앞 인도에 있던 윤 씨를 덮친 것이다. 왼쪽 다리가 부러져 입원해 있는 박 씨는 경찰의 방문조사에서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아직 창호 씨 가족들에게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달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음주운전 피해자 윤창호 씨가 유럽 여행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윤 씨는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에서 만취한 BMW 운전자의 차에 치인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호 씨 지인 제공
지난달 군 복무 중 휴가를 받아 고향인 부산을 찾았다가 사고를 당한 음주운전 피해자 윤창호 씨가 유럽 여행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윤 씨는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에서 만취한 BMW 운전자의 차에 치인 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윤창호 씨 지인 제공

창호 씨 친구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음주 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는 청원에는 4일 오후 10시 현재 19만여 명이 참여했다. 치명적인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를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만 처벌은 여전히 미흡하다.

2018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으로 타인에게 심각한 부상을 입히거나 숨지게 한 혐의(위험운전치사상)로 1심 재판에 넘겨진 4328건의 사건 가운데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7.4%(324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70.9%(3072건), 벌금형이 17.6%(766건)로 대부분이었다.

○ 양형기준에 묶인 음주운전 엄벌

음주운전 가해자를 무겁게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마련돼 있다. 2007년 도입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위험운전치사상죄’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3000만 원의 벌금형, 사망하게 한 경우 1∼30년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선고 형량은 크게 못 미친다. 대법원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게 한 경우 운전자에게 보통 징역 8개월∼2년, 음주운전이나 중상해 등 가중 처벌할 경우 징역 1∼3년을 선고하도록 양형기준을 두고 있다. 가중 처벌 요인이 두 가지 이상이어도 양형기준상 최대 형량은 징역 4년 6개월이 된다.

실제 인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를 들이받아 일가족 3명을 숨지게 한 음주운전자는 지난해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죄질이 나쁘다고 해서 양형기준을 훨씬 넘겨 징역 10년을 선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윤 씨는 “음주운전 양형기준을 높이고, 음주운전은 살인에 준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윤창호법’이 만들어진다면 창호에게 얼마나 의로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음주운전을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아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도예 yea@donga.com·최지선 / 부산=강성명 기자
#만취 bmw#피해자 장기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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