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3>아이 작명(作名)의 유형학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10시 49분


지난달에 태어난 둘째의 이름을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30일 안에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마음은 급한다. 그렇다고 아무 이름이나 지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죽했으면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작명소가 생겨났겠는가.

내가 유난히 이름 짓는걸 어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변(卞)’ 씨인 이유도 있다. 같은 성을 쓰는 분들에겐 죄송한 이야기다. ‘변’ 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단상 하나가 있다. 솔직해 지자. 그리 깨끗하진 않은 바로 이미지가 하나의 장애물이다. 예쁜 이름이 ‘변’ 과 결합됐을 때 의도치 않은 이상함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유명 가수 ‘소녀시대’ 멤버 이름을 변 씨와 결합시켜 보자. 먼저 리더인 태연. 변태연… 그만 하자. 변 씨의 대명사격 인물인 ‘변사또(직권남용, 희롱)’와 ‘변강쇠(힘, Power overwhelming)’도 작명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다. 변 씨가 참 만만치 않다. 첫 째는 딸이어서 ‘변’ 씨로 이름을 짓기가 더 어려웠다. 신경을 많이 썼다. 평생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이름 수백 개를 만들어 나열했던 기억이 난다. 둘째는 아들이라 작명에 대한 부담이 딸 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하다. 하지만 ‘변’ 씨는 여전히 어렵다.


취재를 하며 만난 아빠들에게 “자녀분들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물어보면 다양한 사연을 들게 된다. 사연을 바탕으로 작명 스타일을 분류해보면 크게 4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우선, 적극형과 소극형으로 크게 나뉜다. 부부가 이름을 알아서 짓느냐(적극형), 아니면 부모님이나 친지, 철학관 등에게 우선 맡기느냐(소극형)의 차이다. 2가지 대분류도 다시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에 따라 크게 4자리로 분류가 된다.




1)능동적 적극형

부부가 원하는 이름이 확고한 경우다. 부모가 이름 뿐 아니라 직접 한자에 사주팔자 등등을 따져가면서 이름을 짓는 유형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거의 못 봤다. 일단 한자 풀이에 능통한 부모가 없을뿐더러, 어딘가 모르게 ‘작명을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은 찜찜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예 한자가 어려워서 한글 이름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슬기로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수동적 적극형

일단 부부가 적극적으로 자식의 이름을 짓는 경우다. 그런데 한자나 사주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으니, 부모가 일단 원하는 이름을 몇 개 나열한다. 3, 4개 정도 추리고 나서 이것을 집안 어르신이나, 작명소, 철학관에 가져간다. “나는 이런 이름이 좋으니 여기에 맞는 한자를 골라 달라”고 말하는 경우다. 심심치 않게 많이 보는 경우다. 사실 나도 철학관을 한번 간 적이 있는데 “요즘 젊은 부부들은 원하는 이름에 한자를 맞춰 달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뭐랄까 내가 지었으면서도 나름 신경을 썼다는 일종의 ‘안전빵’ ‘적당한 타협’을 한 경우다.

3)능동적 소극형

일단 부모가 이름을 짓기 보다는 철학관이나 가족 어르신의 도움을 먼저 받는 경우다. 부모가 제3자로부터 이름을 받아온 뒤, 부모가 최종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 수동적 적극형과는 다르다. 제 3자의 뜻이 많이 반영됐지만, 부모가 발로 뛴다는 점에서 능동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한 취재원의 사례를 예로 들어보자. A씨는 자식의 이름을 부모님께 일단 맡기기로 했다. 자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어느 부모님께? 본가? 처가? A씨는 양가 부모님께 이름을 다 받아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선택받지 못한 어르신이 상처를 받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슬기로운 아빠가 되기 전에 슬기로운 사위, 또는 아들이 되려면 잘 생각하자. 모두의 의견을 수렴하는 행위가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구나 싶었다. “내 말 안 들을 거였으면 나한테 왜 물어 봤음?” 이라는 핀잔을 경험해봤던 사람이면 더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4)수동적 소극형

부모의 뜻과 의지가 거의 반영이 안 되는 경우라고 하겠다. 누구에게 부탁도 하기 전에 이름이 결정돼 있는 묘한 경우도 있다. 주례 선생님이나, 집안 어른이 알아서 지어주시기로 한 경우도 이런 케이스다. 부모의 마음에 안들 확률이 매우 높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묵묵히 받아들였다는 한 취재원의 고백도 있었다. 자포자기의 심정마저 든다고 했다. 항렬을 중시하는 집안의 경우 수동적 소극형이 더러 있었다. 성씨와 항렬에 따른 돌림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차피 한 글자만 정하면 되는 상황이라 생각해 그냥 집안 어르신에게 다 맡겨버린 선배도 있었다.

“그냥 OO로 해라.”

“네.”

기타 유형도 있을 수 있겠다. 둘째 이름도 벌금을 내지 않는 마지노선 직전에야 확정할 것 같다. 기사도 마감 직전에 써야 제 맛이기 때문이랄까?

아, 제 첫째는 이름을 어떻게 지었냐고요?


저는 2번에 가깝습니다. 저희 부부는 부르기 좋은 이름을 정하고 ‘작명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했습니다. 딸이 나중에 “아빠 내 이름은 누가 지었어?”라고 물으면 “어플”라고 솔직히 말해야겠지요? 비록 어플로 지었지만 정말 신경 많이 썼다는 마음을 딸이 알아줄까요? 최근에 작명을 하시는 분께 딸의 이름을 알려주니 “잘 지었다. 아주 좋은 이름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어플도 나름 좋은가 봅니다. 이름을 위하여 고민하는 아빠들 파이팅!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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