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살린다는 ‘복합쇼핑몰 의무휴업’… 피해는 자영업자 몫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0일 03시 00분


[규제 공화국엔 미래가 없다]<6>대형 유통시설 영업제한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의 영업시간까지 규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가운데 지난달 개점 1주년을 맞이한 스타필드 고양의 내부 모습. 동아일보DB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의 영업시간까지 규제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인 가운데 지난달 개점 1주년을 맞이한 스타필드 고양의 내부 모습. 동아일보DB
“골목상권 보호라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위해 자영업자의 ‘보이는 손해’를 감수하라는 겁니까.”

지난달 서울 강남구 스타필드 코엑스몰에서 만난 A 씨는 이곳에서 5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다. 올여름 무더위로 하루 평균 7만 명이 코엑스몰에 방문하며 매출은 평소보다 늘었지만 A 씨처럼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자영업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복합쇼핑몰 월 2회 강제 휴무’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유발법) 개정안이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논의 중이기 때문이다. A 씨는 “자영업자 주머니에서 돈을 빼서 다른 자영업자(골목상권)를 돕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을(乙)끼리 싸움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 복합쇼핑몰 10곳 중 7곳은 非대기업 운영

실제로 국내 유통 대기업인 롯데·신세계가 운영하는 복합쇼핑몰 4곳의 입점업체 가운데 68%는 대기업이 아닌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체가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입수한 한국경제연구원의 ‘국내 복합쇼핑몰 임차인 구성 전수조사’에 따르면 복합쇼핑몰 내 1295개 매장 가운데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곳은 총 883곳으로 전체 입점업체 가운데 68%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은 국내 대표 복합쇼핑몰 4곳으로 롯데월드몰, 스타필드 하남, 스타필드 고양, 스타필드 코엑스몰이다. 한경연은 유발법 개정안이 통과돼 이들 복합쇼핑몰이 월 2회 휴무와 영업시간 규제를 적용받게 되면 그 피해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 당초 취지였던 골목상권 보호라는 규제 명분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올해 초 발의한 유발법 개정안은 ‘복합쇼핑몰 패키지 규제법안’으로 불린다. △복합쇼핑몰 영업시간 제한(0∼오전 10시)과 의무휴업일(매월 공휴일 2일) 지정 △대규모 점포 개설이 제한되는 상업보호구역 신설을 통한 입점 제한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최근 민주당이 ‘10대 우선 입법과제’에 이 개정안을 포함시키면서 연내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2012년 대형마트·대기업슈퍼마켓(SSM)의 영업시간을 규제한 이후 복합쇼핑몰에 대해서도 영업시간 규제와 신규 출점 제한이라는 신종 규제가 생기는 것이다.

○ 거꾸로 가는 유통 규제… 명분도 실리도 없어
신종 규제의 가장 큰 문제는 2012년 이후 시행되어 온 대형마트 영업시간 규제의 실익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이를 복합쇼핑몰로 확대하려 한다는 점이다.

2014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대한 소비자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1.5%는 규제의 폐지 또는 완화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비자의 전통시장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했던 당초 입법 취지와 달리 소비자의 62%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이 아닌 ‘중대형 슈퍼를 이용’(38%)하거나 ‘다른 요일에 대형마트를 이용’(24%)한다고 답했다. 전통시장 매출액은 규제 도입 전인 2011년 21조 원에서 2015년 21조1000억 원으로 제자리걸음 수준이었다.

복합쇼핑몰에 의무휴업이 도입되면 규제 목적인 지역 상권 활성화로 이어지기 어려울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신세계에 따르면 올해 스타필드 하남을 방문한 고객 중 하남 거주민은 20%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타 지역 거주인으로 나타났다. 복합쇼핑몰 휴업일이 늘어나면 하남시로 오는 사람이 줄어 지역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고용창출 효과, 관광객 집객 효과 사라져

복합쇼핑몰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각종 규제와 소비 침체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유통점포 대안으로 등장했다.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들은 신사업의 하나로 복합쇼핑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신세계는 하남, 고양, 코엑스에 이어 안성, 수원, 청라, 창원 등에 추가 출점을 계획하고 있고, 롯데도 롯데월드몰, 롯데몰 은평, 김포공항, 군산 외에 상암 등으로 복합쇼핑몰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유통기업들의 새로운 성장 동력인 복합쇼핑몰마저 규제 대상이 되면 출점 전략에도 제동이 걸린다. 이는 곧 고용기회의 상실로 이어져 고용난을 부추길 수 있다. 실제로 대형 복합쇼핑몰 한 개가 특정 지역에 입점하는 경우 5000∼6000명의 직접 고용이 이루어지며 총 1만 명 이상의 취업유발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이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소상공인 3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복합쇼핑몰에도 영업 규제를 시행하면 매출과 고용이 각각 평균 5.1%, 4.0%씩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장에서 만난 복합쇼핑몰 내 자영업자들은 복합쇼핑몰 영업 규제가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끊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복합쇼핑몰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 씨는 “복합쇼핑몰에는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이 찾는데 한 달에 두 번이나 문을 닫으면 이들의 방문도 끊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점포 규제가 소비자 보호 및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유발법 목적에 맞게 소비자 편익과 일자리 및 산업 활성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상호 한경연 산업정책팀장은 “세계 유통산업이 시간과 국경을 초월해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상황에서 거리 및 영업 제한에 국한된 국내 유통 규제의 타당성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염희진 salthj@donga.com·강승현 기자
#골목상권#복합쇼핑몰 의무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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