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최고의 연금 전문가로 평가받는 스벤 호트 린네대 명예교수(68·사진)는 2012∼2015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 국회 도서관에서 그를 만났다. 요즘 한국에서 국민연금 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트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 방향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보험료를 더 내게 하고 그에 맞춰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가 가닥을 잡은 개혁 방향과 대체로 일치한다.
다만 호트 교수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최소한의 노후 보장이 돼야 한다는 점을 전제 조건으로 뒀다. 하지만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에 대해 호트 교수는 현재 10%인 부가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조심스레 제안했다. 그는 “소비문화가 발달한 한국이기에 충분히 가능한 정책이라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에서는 부가세율이 25%다.
호트 교수는 합계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2.0명 수준으로 국내(지난해 1.05명)의 두 배 수준이다.
호트 교수는 국민적 합의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지난달 스웨덴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연립여당은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도 우파 성향의 야권 연맹과 극우 진영인 스웨덴민주당이 약진했다. 스웨덴 안팎에서는 “보수 연정이 탄생하면 연금을 비롯해 복지 시스템이 후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호트 교수는 “스웨덴 연금 제도는 오랜 논의와 국민적 합의로 정착된 것이다. 보수 정권이라 해도 큰 틀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스웨덴에서는 1990년 초반에 7개 정당이 참여해 연금 개혁을 위한 실무 작업단을 꾸렸다. 이어 8년 동안의 논의를 거쳤다. 노사정의 대타협을 통해 최종안을 확정했다. 당연히 진통이 있었다. 여당 내에서도 찬반이 팽팽했고, 일부 야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최종안을 확정한 후로는 논란이 잦아들었다. 호트 교수는 “국민은 지지하는 정당을 통해 의사 표현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긴 합의 과정이 있었기에 결론을 존중했다”라며 “이런 국민적 믿음이 개혁 과정에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 “내 임기에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며 정치인들 폭탄 돌리기”
클로제 獨 기어한앤드컴퍼니 대표
해외의 다른 연금 전문가들은 한국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특히 한국인으로 해외에서 연금과 관련된 업무를 해 온 전문가들도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우선 정치인들이 표만 의식한다면 연금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독일 금융상품 판매 회사인 기어한앤드컴퍼니의 노르베르트 클로제 대표는 “내 임기에만 터지지 않으면 된다며 ‘폭탄 돌리기’를 하는 정치인이 있는 한 연금 개혁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클로제 대표는 “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독재자 스타일의 정치인만 연금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덧붙였다.
캐나다의 투자금융자산관리회사 디와이 앤파트너스를 운영 중인 윤동환 대표는 국민과 언론 모두 장기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했다. 윤 대표는 “허술한 정책을 펼친다면 선거에서 응징하면 된다. 조금의 제도 변화가 있을 때마다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은 민주주의와도 어긋나고 제도 개혁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펀드평가회사인 모닝스타호주법인의 앤서니 세란 이사는 수익률을 더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호주 기업연금의 수익률은 상당히 높다. 그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투자 격언대로 위험을 감수한 만큼 그 열매는 더 달다”라고 말했다.
일본 게이오대 고마무라 고헤이 교수는 “소비세 인상 등을 통해 연금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도 있다”며 “이 경우에도 고소득자들은 더 세금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스톡홀름=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 프랑크푸르트=송진흡 jinhup@donga.com / 시드니=윤영호 / 도쿄=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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