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원정대 참변]
김창호 대장의 죽음과 박영석 대장의 죽음은 연결돼 있다.
박 대장은 2011년 10월 세계적 난코스였던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됐다.
당시 히말라야를 등반하고 있던 김 대장은 자원해서 박 대장의 시신 수색조에 합류했다. 밧줄로 몸을 묶고 박 대장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애썼다. 박 대장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김 대장은 7년 뒤 구르자히말 남벽에서 숨졌다. 이곳 역시 세계적 난코스로 꼽히는 지역이다.
박 대장은 “눈과 안개가 가득하다. 낙석이 심하다”는 최후 교신을 끝으로 실종됐다. 김 대장의 사고 현장 주변에도 부서진 얼음조각이 가득했다.
국내에서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사람은 6명이다. 2000년 7월 엄홍길, 2001년 7월 박영석, 2003년 7월 한왕용, 2011년 9월 김재수, 2013년 5월 김창호, 올해 7월 김미곤 씨 등이 14개 봉우리를 완등했다.
엄홍길 씨가 2000년 7월 K2를 끝으로 14좌를 완등했으나 그 과정에 있어서 시샤팡마와 로체 등정 여부로 시비가 일었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의 14좌 완등자를 놓고 엄홍길이냐 박영석이냐라는 논쟁이 일기도 했다. 엄 대장은 2001년 9월 로체와 시샤팡마를 모두 다시 올랐다. 엄 대장은 이후 14좌 외에 그 부속 봉우리로 여겨졌던 얄룽캉과 로체샤르 2개의 봉우리를 더 올라 모두 16좌 등정에 성공했다. 박 대장 실종 소식에 오열했던 엄 대장은 “일부에서 라이벌 의식을 부추겼지만 우리는 산에서 경쟁이란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를 존중했다”고 회고했었다.
이들은 전화번호 끝자리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의 높이를 뜻하는 8848로 사용하며 산에 대한 염원과 애정을 드러내곤 했다. 김창호 대장은 험난하기로 이름 높은 K2의 높이를 뜻하는 8611을 사용했다. 14좌 완등자 중 김창호 대장과 박영석 대장이 목숨을 잃었다. 엄 대장은 14좌 완등 후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했고 히말라야 오지에 학교와 병원을 짓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한왕용 대장은 트레킹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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