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궤’ 120년만에 다시 태어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8일 03시 00분


수원시, 佛 소장 13책 복제본 첫 공개
가장 오래된 조선왕조 한글본 의궤… 사도세자 묘소 옮기는 과정 등 담아
화성행궁도 담긴 채색본 높은 가치
市, 1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전시

경기 수원시가 17일 시청 상황실에서 한글본 ‘정리의궤’ 13책 복제본을 국내 최초로 제작해 공개했다. 정리의궤 복제본은 1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가 17일 시청 상황실에서 한글본 ‘정리의궤’ 13책 복제본을 국내 최초로 제작해 공개했다. 정리의궤 복제본은 1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수원시 제공
현존하는 조선왕조 의궤 중 가장 오래된 한글본 의궤로 평가받는 ‘정리의궤(整理儀軌)’가 17일 경기 수원시청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조선왕조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500여 년(1392∼1910년)에 걸쳐 왕실의 중요 행사와 나라의 건축 사업 등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책으로 높은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2007년 6월 제8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원시는 이날 프랑스 국립도서관·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이 소장한 한글본 ‘정리의궤’ 13책의 복제본을 제작해 공개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채색본 1책과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이 소장한 12책의 복제를 최근 완료한 결과물이다. 복제본은 18일부터 12월 16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에서 특별기획전으로 전시된다.

120여 년 전인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리의궤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옮기는 과정을 담은 ‘현륭원 의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8일간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화성 축조 과정을 담은 ‘화성성역의궤’ 등을 한글로 정리한 의궤로 국내에는 없는 판본(板本)이다. 한글본 정리의궤는 총 48책 중 13책만 현존하고, 이 중 12책이 프랑스 국립동양어대학 언어문명도서관에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채색본 ‘정리의궤(성역도) 39’는 화성행궁도 등 수원화성 주요 시설물과 행사 관련 채색 그림 43장, 한글로 적은 축성(築城) 주요 일지 12장 등 총 55장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화성성역의궤’(1801년)에는 없는 봉수당도, 당낙당도, 복내당도, 유여택도, 낙남헌도, 동장대시열도 등이 수록돼 있어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정리의궤와 기존 화성성역의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채색’이다. 목판으로 인쇄된 화성의궤 속 그림은 훈련도감 소속 마병(馬兵)이었던 엄치욱의 작품인데, 정리의궤는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작품이어서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정리의궤 원형복제는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높다는 것을 전 세계에 확인시킨 것이다”며 “복제본을 보고 수원화성 복원사업을 장기적으로 확대하고 시민에게 알릴 콘텐츠를 발굴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말했다.

프랑스가 소장한 한글본 정리의궤는 한국의 첫 번째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35∼1922)의 수집품으로 12책은 국립동양어대학에 기증됐고, 채색본은 경매상을 거쳐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구매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원시는 2016년 7월 한글본 정리의궤 13책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문화재청 등의 협조를 받아 자료 확보에 나서 2년 3개월 만에 복제를 완료해 공개했다. 수원시는 당시 프랑스에 정리의궤 대여를 요구했지만 ‘외규장각 의궤’ 반환 이후 문화재 환수에 민감한 프랑스 측이 대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정리의궤는 약탈 문화재가 아니므로, 환수 문화재 대상이 아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정조 시대와 수원화성 연구에 큰 힘이 될 한글본 정리의궤가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원=이경진 기자 lkj@donga.com
#정리의궤#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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