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문득 회사에서 목을 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따돌림 받는 사람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해서요.”
충북 청주의 대기업 계열사 LG하우시스에서 근무하는 A씨가 특정부서 내 집단따돌림·괴롭힘 피해를 호소하며 힘들게 토해낸 말이다.
단체생활에서 다수가 소수를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왕따 문화’로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산된 ‘왕따’라는 은어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왕따는 집단 따돌림·괴롭힘의 피해자를 낙인찍기 위해 가해자들이 만들어 낸 표현이다.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도 모자라 ‘왕따’라는 별명을 붙임으로써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당시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사건사고가 이어지면서 왕따를 근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자성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왕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줄어들었지만, 수면 아래에서 집단 따돌림·괴롭힘으로 고통 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지난달 2일 충북 제천에서 고등학생 B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B양을 폭행하고 협박한 혐의로 학교 선배·친구 등 6명을 불구속 입건, 검찰에 송치했다.
B양과 갈등을 빚었던 친구가 SNS상에 B양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을 퍼뜨렸고, 이를 본 친구·선배들이 B양을 폭행하고 SNS 메시지를 통해 협박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B양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온라인상에서 특정인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 공격을 가하는 ‘사이버 불링’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완전하게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기를 벗어나서도 집단 따돌림·괴롭힘 문화는 여전하다.
LG하우시스 옥산공장 근로자 6명은 지난 17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정부서에서 수년에 걸쳐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이 이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피해를 주장한 이들은 대부분 30대 청년들이다.
이들은 노동조합 활동을 했거나 노조의 지침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특정 팀장 주도로 따돌림과 폭언 등이 이뤄졌고, 심지어 후배사원들로부터도 반말과 욕설을 듣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피해자들은 불안, 자살 충동, 신경정신과 치료, 자살 미수 등 극도의 심리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사회적 관심과 도움을 요청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 20~64세 임금근로자 1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3%가 직장 내 괴롭힘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충북도교육청의 ‘2018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의 34.6%가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답변했고, 집단따돌림(16.5%), 스토킹(11.4%), 사이버 괴롭힘(11.3%) 등이 뒤를 이었다.
청소년·성인을 가리지 않고 집단 따돌림·괴롭힘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내놓는 논리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경향을 띤다.
피해를 주장하는 상대도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사안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성급하게 일방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지만, 소중한 생명까지 앗아갈 정도의 괴롭힘·따돌림에 대해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창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회문화국장은 “청소년 사이의 따돌림·괴롭힘은 오래 전부터 문제가 되어왔지만 최근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등 직장 내에서도 이런 일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며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공동체 의식’을 잃고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만연해 있는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집단 따돌림·괴롭힘에서 가해자·피해자의 문제도 있지만 ‘침묵하는 다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를 더 키우는 것”이라며 “공동체 의식의 회복 노력 등 사회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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