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 고치려 노력해봐도”…조선족 향한 시선은 여전히 ‘싸늘’

  • 뉴스1
  • 입력 2018년 10월 21일 08시 13분


‘일상의 조선족’, 특정 몇건의 범행에 전체에 편견
한국 좋아서 온 사람도 많아…편견 걷고 포용해야

14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 중국동포 거리. /뉴스1 DB
14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 중국동포 거리. /뉴스1 DB
#1 경기도 부천시에 거주하는 한국계 중국인(이하 조선족) 김모씨(28)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최근 서울말을 배우고 있다. 디자인 관련 공부를 하고 있는 김씨는 관련 업계로의 취업을 꿈꾸고 있지만, 연변 말투가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해서다. 그는 “나보다 먼저 온 선배도 한국에서 대학 졸업을 했지만 결국 취업을 하지 못해 음식점을 차렸다”면서 “말투라도 바꿔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 서울 용산구의 한 찜질방에서 카운터 일을 하고 있는 50대 조선족 여성 김모씨는 야간에 일을 하는 것이 유독 힘겹다. 음주자는 입장이 불가능한데도 고집을 부리는 일부 ‘진상 취객’들 때문이다. 한참을 입씨름 하다보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짱깨’, ‘범죄자 집단’ 등의 폭언이다. 김씨는 “평소에도 우리 말투를 듣고 하대하는 분들이 많다”면서 “말투를 고쳐서 달라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3 서울 영등포구의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는 40대 여성 오모씨 역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마자 조선족이라며 꺼려진다는 반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술에 취한 손님이 마사지 도중 유사 성행위를 요구해 소스라치게 놀란 경험도 있다고. 오씨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조선족이라 더 막 대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익숙한 ‘일상의 조선족’

영화 ‘범죄도시’ 스틸 컷 © News1
영화 ‘범죄도시’ 스틸 컷 © News1
국내에서 조선족을 마주치는 것은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식당 종업원이나 목욕탕 카운터 등 단순 노동직 뿐 아니라 대학교나 일반 회사 등에서도 마주칠 수 있을 정도로 많아졌다.

199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국내로 들어온 조선족은 실제 현재 국내 체류 외국인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법무부 산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9월30일 기준 국내에 등록된 한국계 중국인은 33만5392명으로 가장 많다. 그 뒤를 중국인(20만7522명), 베트남인(16만4781명) 등이 잇는다.

특히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경기 안산시 등은 대표적인 ‘조선족 밀집지역’으로 꼽힌다. 해당 지역에서는 중국어 간판이 걸려있는 음식점, 거리에서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조선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TV에서도 조선족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동거’


지난해 12월 대림역에서 살인을 저지른 조선족 황모씨가 경찰서로 압송되는 모습. 2017.12.14/뉴스1
지난해 12월 대림역에서 살인을 저지른 조선족 황모씨가 경찰서로 압송되는 모습. 2017.12.14/뉴스1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조선족들은 차별적 시선을 받고 있다. 조선족들을 불법체류자, 잠재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다수 밀집해 사는 지역을 ‘범죄 소굴’로 규정하기도 한다.

TV나 영화 등의 대중매체 역시 그들의 편은 아니다. 매체에 등장하는 조선족들은 흉악한 범죄자이거나, 어수룩한 말투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인터넷 상에선 더욱 극단적인 혐오를 드러낸다. SNS와 유튜브 등에는 조선족을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하거나, 조선족 괴담을 소개하는 영상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족 관련 댓글은 어김없이 ‘악플’ 일색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강서 PC방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조선족이라는 ‘괴담’까지 떠돌았다. 물론 경찰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일축했다. 조선족에 대한 인식은 이렇듯 극히 부정적이다.

◇오원춘·대림역 사건…조선족은 모두 악랄해?

이러한 부정적 시각이 아무런 근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조선족이 범죄자였던 잔혹한 사건이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모양새다.

2012년에는 오원춘, 2014년에는 박춘봉이 각각 여성을 토막살인하는 끔찍한 범행을 했고, 지난해에는 대림역 인근 골목에서 조선족 황모씨가 또 다른 조선족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조선족을 ‘잠재 범죄인’ 취급해선 곤란하다. 실제 통계가 이를 잘 드러낸다.

지난 2016년 국정감사 당시 경찰청이 제출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조선족을 포함한 국내 거주 중국인 전체의 범죄율은 외국인 중 평균 수준이다. 10만명당 범죄자 검거 건수가 2220명으로 4837명의 러시아, 4678명의 몽골 등에 이어 7번째 순이다. 한국인의 10만명당 범죄율 3495명과 비교했을 때 오히려 낮다.

◇우리도 한국이 좋아서 왔는데…

앞서 언급한 대학생 김씨는 한국을 동경해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중국도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 대한 차별이 있다. 한국은 좀 더 자유분방하고 내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왔는데 편견이 많은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GK희망공동체가 매년 개최하는 한중문화페스티벌. © News1
GK희망공동체가 매년 개최하는 한중문화페스티벌. © News1
김씨는 “처음에는 대학교 친구들이 거리를 두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인터넷 괴담’ 같은 것을 보고 무서웠다고 하더라”면서 “그런 것들이 많아질 수록 조선족들 스스로도 위축이 되고 자격지심도 생기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5년째 한국 생활 중인 허을진 GK희망공동체 이사장은 이런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4년부터 인터넷 카페를 통해 조선족 모임 등을 주선하던 그는 2014년부터는 한국인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허 이사장은 “조선족들끼리 모이는 것보다는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야 괴리감없이 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주로 문화행사나 봉사활동 등을 이어가는데, 최근에는 조선족과 한국인의 비율이 6대4 정도로 한국인의 참여가 많아졌다”며 웃었다.

그는 “모두 한국이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오랜 시간 중국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무시하고 막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 온 조선족들이 나쁜 일을 저질러 뉴스에 오르내린 경우도 적지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족 모두를 범죄집단처럼 생각하진 않았으면 한다”면서 “물론 조선족들 스스로가 먼저 좋은 행동을 해서 이미지를 바꿔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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