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무부장 A 씨의 쌍둥이 딸이 부정을 저질러서 다른 학생들의 성적이 밀려나게 됐어요.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린다면 이미 학생들은 졸업한 뒤예요. 빨리 쌍둥이 딸의 시험 점수를 0점 처리해서 학년이 바뀌기 전에 (성적을) 되찾고 싶다는 겁니다.”
22일 오후 4시경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의 한 회의실. 학교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한 학부모가 목소리를 높이며 학교 측에 두 학생의 ‘0점 처리’를 강하게 요구했다.
이날 회의는 교장과 교직원, 학부모 등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시험지 유출 의혹이 이 회의 정식 안건은 아니었지만 학부모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A 씨와 쌍둥이 딸을 조속히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학교 측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교칙상 조치를 할 수 없다. 기다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설전이 오갔다.
○ “3학년 전 0점 처리” vs “대법원 판결 기다려야”
본보가 단독 입수한 숙명여고 운영위원회 회의 녹취 파일에 따르면 학부모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한 부분은 학년이 바뀌기 전에 현재 2학년인 쌍둥이 딸의 점수를 0점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A 씨를 파면해야 한다’ ‘학교 측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도 있었다.
‘강남 8학군’에 위치한 숙명여고의 내신 경쟁은 치열하다. 문·이과 전교 1등인 쌍둥이 딸의 성적이 0점 처리된다면 다른 학생들은 등수가 올라가 내신 등급이 바뀔 수 있다. 회의에 참여한 학부모 B 씨는 “내신 등급의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은 등수 하나 차이로 등급이 바뀔 수 있고, 갈 수 있는 대학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 두 학생의 성적을 0점 처리해야 내년에 수시 지원을 할 때 다른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게 학부모들의 생각이다. 학부모 C 씨는 “퇴학은 나중에 시키더라도 성적 정정만큼은 학년이 바뀌기 전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교장은 “대법원 판결 전까지 학교가 징계할 근거가 없다. 그 전에 학교가 임의대로 (0점 처리하는 것은) 성적 조작이 된다”고 말했다.
○ 시교육청 “확정 판결 전 쌍둥이 딸 징계 가능”
두 학생에 대한 징계는 교직원 5∼10명으로 구성되는 학교 선도위원회(선도위)에서 결정한다. ‘2018년 숙명여고 학생생활지도 징계기준’에는 ‘고사 중 부정행위를 했거나 동조한 학생’은 해당 시험을 0점 처리하도록 돼 있다. 이를 근거로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수사 결과를 통해 명백한 부정행위가 드러나고 학생 과실이 입증되면 0점 처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7월 광주의 한 고교에서도 학교 운영위원장 D 씨가 시험지를 빼돌려 자녀에게 건넨 것이 밝혀지자 학교 측에서 자녀의 시험 점수를 0점 처리했다.
또 쌍둥이 딸의 징계와 관련해 학교 측은 “학생생활지도 징계기준에 따라 ‘형법상 유죄로 판결된 학생’에 대해서만 퇴학 처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징계 기준에는 ‘부정행위를 목적으로 시험 문제를 사전에 절취하거나 절취 후 누설한 학생’에 대해 최대 퇴학 조치가 가능하다는 조항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선도위는 법원 판결과 별개로 퇴학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장은 23일 본보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학부모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규정상 ‘형법상 유죄가 확정된 경우 퇴학’이다. 위법을 하며 처벌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유죄 확정 뒤 징계’ 방침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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