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규 씨(63)는 10년 전인 2008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하다. 그해 27년간 다닌 식품회사를 그만뒀다. 7년 아래 후배가 중역으로 승진한 상황에서 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먼저 몸부터 탈이 났다. 잇몸 수술을 받고 6개월간 요양을 했다.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당시 아들 둘은 대학생,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자천타천으로 ‘인생 2모작’ 준비를 시작했다. 후배 권유로 노사발전재단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강의를 듣고 상담을 받으며 6개월을 보낸 뒤 장 씨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자신이 한평생 일해 온 식품산업 분야에 전문성이 있음을 확인하면서다.
○ “우리는 노인이 아니라 신(新)중년”
자신의 가치를 확인한 장 씨는 김치공장의 최고경영자(CEO)로 3년간 활동했다. 이어 농촌진흥청 강소농지원단 민간전문가로 전국을 돌며 농업인을 상대로 컨설팅을 했다. 현재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에서 중장년 취업지원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인생 4모작’에 성공한 장 씨는 재취업을 준비 중인 중장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직업은 ‘무직자’가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구직자’입니다. 구직자도 명함을 파야 합니다. 자신의 경력과 커리어를 적은 명함을 돌리며 당당해집시다.”
장 씨와 같은 5060세대는 약 1340만 명에 이른다. 고도성장의 주역인 이들은 부모 부양과 자녀 양육, 조기 퇴직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현 정부는 고령자, 노인 등 5060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용어를 폐기하고 ‘신(新)중년’으로 이름 붙였다. 다양한 재취업 정책을 통해 고령화시대에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한 시중은행에서 28년간 근무하다 2010년 명예퇴직한 장기명 씨(63)는 퇴직 당시만 해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실적 압박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퇴직 직후 오라는 중소기업이 있었지만 취업을 거부하고 1년간 전국을 돌며 소설을 썼다. 하지만 해방감에서 오는 만족은 오래가지 않았다. 장 씨는 그래도 일이 있어야 자존감이 유지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하지만 영리기업에서 일하긴 싫었다. 오랜 직장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사회와 나누고 싶었다. 마침 서울시와 비영리법인 ‘희망도레미’, 사회적 기업 ‘신나는 조합’이 함께 운영하는 ‘마이크로 크레딧’(무담보 소액대출)을 알게 돼 참여했다. 장 씨는 현재 매달 영세사업장 20여 곳을 직접 방문해 대출 심사를 하고, 재테크와 재무설계를 도와주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비록 한 달 수입은 50만 원 정도지만 만족감은 그 이상이라는 게 장 씨의 설명이다.
“젊을 때는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면 은퇴 후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해 일해야 자존감을 확립할 수 있어요. 내가 남을 도와줄 수 있고, 이 사회가 아직 나를 필요로 한다는 자긍심이 저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 대한상공회의소가 10월 31일, 11월 1일 이틀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하는 ‘2018 리스타트 잡페어’에서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중장년일자리센터 등 신중년들을 위해 마련한 재취업 지원 정책과 프로그램을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 일자리 영토 넓히는 청년들
사상 최악의 고용대란 속에 ‘일자리 영토’를 해외로 넓히는 청년도 점점 늘고 있다. 글로벌기업의 싱가포르 지사에서 간부로 일하는 서세나 씨(36·여)는 대학생 시절 그 흔한 해외 경험을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그저 평범한 법대생이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에 지쳐 있던 서 씨는 2005년 우연히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해외 인턴십 모집 공고를 봤다.
“이건 나에게 찾아온 기회”라고 생각했다는 서 씨는 인턴십에 합격한 뒤 CJ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사 신규사업 기획팀에서 5개월간 값진 경험을 쌓았다. 이후 국내 한 핀테크 기업에 합격해 4년을 다녔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처음 출장을 간 싱가포르에서 일해 보겠다고 마음먹고 사표를 쓴 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MBA)에 들어가 싱가포르 교환학생으로 현지 경험을 쌓았다.
졸업 후 2011년 한 외국기업의 한국지사에 영업직으로 입사했고, 사내 공모를 거쳐 싱가포르 지사로 발령받았다.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 자신의 소망인 해외취업을 드디어 이뤄낸 셈이다. 해외취업에 도전하는 청년들의 멘토로도 활동 중인 서 씨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어두운 동굴을 헤맬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환경에서 일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를 해외 인턴십을 통해 깨달았다”며 “철저한 준비는 필수다. 각 나라의 문화와 특성을 미리 잘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리스타트 잡페어에는 청년들의 해외취업을 돕는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외에 한국고용정보원, 한국폴리텍대 등이 참가해 다양한 청년정책을 소개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공공일자리관 부스를 통해 공단의 청년 채용정보를 자세히 알려준다.
여성가족부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해 전국 155곳에서 운영하는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 일자리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할 계획이다. 여가부에 따르면 이 센터에선 현재 790개 직업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5000여 명이 수료하고 1만여 명이 재취업에 성공했다. 또 지난해 재취업 인턴십을 거친 5958명의 취업률은 97.1%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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