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응급환자 병원 전전 여전… 충남-전북-제주 등 농촌지역 높아
‘골든타임 2시간’ 넘기기 일쑤, “이송체계만 바꿔도 생명 살려”
충남의 한 소도시에 사는 A 씨(61)는 8월 명치뼈 주변이 묵직한 느낌과 함께 아파오자 지역 의료원 응급실을 찾았다. 체한 줄로만 알았는데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급히 충남 천안시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첫 증상이 나타난 지 4시간이 지난 후였다. A 씨는 이 대학병원에서 막힌 혈관을 넓혀주는 심장혈관(관상동맥) 확장술을 받아 목숨은 건졌지만 심장세포가 상당히 괴사해 호흡 곤란과 심부전을 앓게 됐다.
○ 지난해 ‘응급실 뺑뺑이’ 1222명
급성 심근경색이 발병하면 2시간 안에 응급실로 옮겨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기껏 찾아간 응급실이 인력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심장혈관 확장술을 할 수 없다면 2시간 골든타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적잖은 환자들이 A 씨처럼 엉뚱한 응급실을 전전하다가 치료 적기를 놓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중앙의료원이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에게 낸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돼 응급실을 찾은 환자 2만6430명 중 1222명(4.6%)이 처음 찾은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을 옮긴 환자 비율을 시도별로 살펴보면 충남(14%)과 전북(8.6%) 제주(7.0%) 등이 높은 반면 대전(1.0%)과 울산(1.0%) 부산(1.5%) 서울(2.8%) 등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 지역은 낮았다.
시군구 252곳(구가 있는 도시는 구별 집계)을 대상으로 환자 전원(轉院) 비율을 살펴보면 지역 간 차이가 더 확연히 벌어졌다. 충남 서산시에선 급성 심근경색 환자 171명 중 다른 병원으로 옮긴 경우가 67명(39.2%)이나 됐다. 10명 중 4명꼴로 ‘응급실 뺑뺑이’를 겪었다는 뜻이다. 서산 외에도 태안군(30.6%) 청양군(26.3%) 홍성군(25.7%) 당진시(22.8%) 등 충남 지역에는 전원 비율이 상위권인 시군이 몰려 있다. 그만큼 응급의료 시설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 골든타임 준수율 아무리 높아도…
심근경색 발병 뒤 2시간 내 응급실을 찾는 ‘골든타임 준수율’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기는 전원 비율이 높다면 환자의 생명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그런 지역이 적지 않았다. 경기 광명시는 지난해 급성 심근경색 환자들의 첫 응급실 도착 시간 중앙값(도착 순서대로 환자를 줄 세웠을 때 정중앙에 위치한 사람의 시간)이 93분으로 비교적 짧았다. 하지만 환자의 16.4%는 첫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전국 11곳뿐인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내년부터 전국 곳곳에 지역 센터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심장혈관 확장술을 하려면 심장내과 전문의와 영상기사, 간호사 등 3명이 병원에 상주해야 한다. 10억 원 이상인 심장혈관 조영실도 갖춰야 한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역 병원이 갖추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큰돈을 들여 새 센터를 짓기보다 불필요한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행법상 임상병리사 자격이 없는 구급대원은 환자의 심근경색 여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심전도 측정기를 쓸 수 없다. 또 심근경색이 의심되면 곧바로 심장혈관 확장술을 시행할 수 있는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구급대원들이 그런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신동근 의원은 “복지부와 소방청이 이송 체계를 고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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