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5일 ‘사립유치원에 국가회계시스템(에듀파인) 도입’, ‘국공립유치원 내년 증설목표 2배로 확대’ 등 고강도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책을 내놨다. 당장 이날 저녁부터 전국 각지에서 일부 사립유치원이 원아 모집정지 및 폐원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쏟아졌다.
그런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건 경기 광주에서 6개 유치원을 운영한다는 A이사장이 학부모들에게 내년도 만 3세 신입원아를 모집정지한다고 통보했다는 소식이었다. 광주 지역 전체 유아의 절반이 A이사장의 유치원에 다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기교육청이 비상대책반을 꾸리고 교육부가 직원을 급파하는 등 소동이 빚어졌다. 경기교육청은 “폐원 신청 공문이 정식 접수되지 않아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도 해당 6개 유치원 주변 공립 병설유치원에 학급 증설 계획을 세우는 등 대처에 나섰다.
일각에서는 A이사장이 6개 유치원을 운영하는 ‘기업형’이라며 지역에서의 유아 수용 영향력을 무기 삼아 정부를 상대로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그가 운영하는 유치원 중 1곳은 지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리 유치원 명단에 포함됐다. A이사장은 정말 ‘장사꾼’일까? 그래서 고강도 대책이 나오자 모집정지 선언을 한 걸까? 국민의 시선에서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A이사장 등 사립유치원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25일 밤 그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1시간 동안 이뤄졌다.
―내년부터 3세 신입원아를 모집정지한다고 들었다. 이유가 궁금하다.
“경기 광주 지역에서 유아교육한지 23년째다. 23년 동안 6개 유치원을 세웠고 광주 지역 유아 절반이 우리 유치원에 다닌다. 지금까지 광주에서 유아교육은 내가 1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유치원 감사결과 실명 공개 뒤 하루 아침에 ‘비리 원장’이 됐다. 일곱 살 짜리 애들이 뉴스를 보고와서 아침에 나한테 ‘원장님 나쁜 짓 했죠’ ‘가방샀죠’ ‘노래방도 갔죠’ 그런다. 어떻게 더 하란 말인가. 이런 말 들으며 하고 싶겠나. 자괴감이 든다.”
―감사에서 적발된 건 사실 아닌가.
“억울하다. 23년간 유치원 하면서 이전에도 감사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문제없다던 게 갑자기 2013년 이후 감사에서 문제라고 했다.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다. 어느 날 갑자기 시민감사관이 와서 ‘이것은 틀렸다’ ‘이것도 틀렸다’ 하는데 당혹스러웠다. 우린 하던대로 했을 뿐인데. 지금까지 사립유치원들이 유아교육을 100년, 110년동안 책임지다시피 했는데 국가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혁명군, 해방군처럼 나타나 감사를 해놓고 시정잡배보다 못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감사 지적사항을 보면 설립자에게 수천 만 원을 무단이체 하는 등 회계집행 부적정으로 적발된 게 많다. 급식 운영 부적정으로 87만여 원 보전하라는 처분도 받았던데….
“23년 간 유치원 6개 세우는데 200억원 투자했다. 국가에서 10원도 지원받지 않고 내 사비 털어서 지금까지 했다. 가장 최근에 개원한 곳은 8개월 전에 문 열었는데 60억원 들었다. 그런데 이사장이 업무추진비로 작은 유치원에서는 150만 원, 큰 유치원에서는 250만 원 씩 가져갔다고 감사 적발 된 것이다.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인데 왜 가져갔냐는 게 교육부 논리다. 난 정말로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유치원 회계에 대한 규칙은 2017년 9월 처음 나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감사는 공립유치원 기준을 잣대로 감사했다. 그런데 200억 들여 유치원 세운 나랑 공립유치원이랑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도 국가는 내가 잘못이고 보전하라고 하길래 다시 돈 다 채워넣고 시정명령에 따랐다. 그런데 이미 다 처리 한 것을 몇 년 지나 2018년에 터뜨리고 ‘비리 유치원’이라고 그런다.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내가 200억원 투자해 유치원 세운 사람인데 87만원 급식비 떼어 먹자고 회계부정 저질렀을까? 행정실수였다. 초중고에는 회계 담당하는 행정직원 있지만 유치원은 그런 것 없다. 급식비는 급식비 계정에 써야하고 간식비는 운영비 계정에 써야하는데 그걸 잘못 썼다. 그게 또 감사 지적사항에 걸렸다. 휴대전화 요금 썼다고 지적받은 것도 그렇다. 유치원에 선생님들과 함께 쓰는 업무용 공용 휴대전화가 있는데 그게 내 명의로 돼 있었다. 그 요금을 냈다가 걸렸다. 그런데 그런게 안된다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고의가 아니였다고 아무리 말해도 원장의 비리라고 한다. 지금 사립유치원은 다 비리 집단이 되어버렸다.”
―정부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각종 보조금 받지 않나.
“자꾸 누리과정 지원금 얘기하는데 그것은 사립유치원에 준 것 아니지 않나. 학부들에게 직접 지급해야 하는데 (정부가) 귀찮으니까 유치원에 한번에 다 넣어준 것 아닌가. 누리과정 지원금 없었으면 유치원들이 학부모들에게 받았을 돈이다. 우리는 대리수령만 했다. 정치가들이 표 얻을려고 학부모들에게 22만 원씩 지원하고 나서 왜 그걸 사립유치원이 횡령했다며 도둑놈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처음에 누리과정 지원금을 유치원에 줄 때부터 의아하게 생각했다. 지금 정부는 사립유치원이 무한의 공공성을 가지고 하라는 건데 우리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인가 싶다. 차라리 내가 이 돈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서 장학재단 이사장을 했으면 훨씬 행복하게 살았을 것 같다.”
―무슨 돈으로 200억원을 투자해 유치원을 6개나 세웠나.
“원래 돈이 좀 있었고 공대 나와서 학원을 운영하며 또 벌었다. 건설업도 하고 하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물론 아이들이 많았던 초창기에는 유치원에서도 벌었지만 그건 많지 않았다. 처음 유치원을 시작한 건 광주 지역에 우리 아들이 다닐 유치원이 없어서였다. 하도 유치원이 없고 계속 (추첨에) 떨어져서 차라리 내가 하나 세우자 한거다. 이후 석·박사학위는 유아교육 전공으로 했다. 우리 아이 셋이 다 우리 유치원 나왔다. 그런데 이번 비리 유치원 파문 일면서 아이들 친구들도 날 어떻게 볼까 싶고…. 온 국민에 사립유치원이 비리 집단으로 낙인찍힌 이상 접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내가 이런 꼴 보려고 세웠을까.”
―유치원이 여럿인데 8개월 전 60억 원을 들인 새 유치원은 왜 설립했나.
“광주에서 유아교육은 내가 1등이라 자부했다. 그런데 새 아파트가 들어오는데 그쪽 유치원이 대책이 없었다. 그쪽 아이들 때문에 우리 기존 유치원 대기자가 400명이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몰려오는데 교육청은 나몰라라 하고 있고…. 사실 그쪽에 내가 미리 사둔 땅이 있었다. 그래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나 말고 또 다른 유치원이 하나 더 들어오기로 돼 있었는데 그 쪽은 설립을 포기했고 나만 했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된 거다. 지금도 우리 유치원 대기자가 많은데 돌이켜보면 (설립을 포기했던) 그 사람이 현명했던 것 같다.”
―왜 국가에선 공립 단설유치원을 짓지 않았나.
“내 말이 그 말이다. 국가가 거기에 단설을 지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가) 돈이 없지 않냐. 나는 사립이니까 (아껴서) 60억 원 들여서 지었지 공립은 (정부 돈으로 하니까) 단설 하나에 100억 원을 들여 짓는다. 짓는 돈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단설 하나 지으면 연간 운영비가 10~20억 원이 든다. 내가 지은 단설 유치원 6개를 기준으로 하면 정부가 600억 원 들여 건물 짓고 연간 최대 120억 원을 투자해야 운영된다. 그걸 지금 사립들이 해 왔는데 정부는 저렇게 큰소리만 치고 사립을 도둑으로 만들었다.
지금 국가가 책임지고 유아 교육하겠다고 하는데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하려면 1조 원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근데 해보면 알거다. 1조 원만 필요한 게 아니고 유지비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국가가 무슨 수로 그 비용을 다음 세대에게 지울지 모르겠는데 단설유치원 많이 지으면 나중에 아이들도 줄어들텐데 엄청난 부담이 된다.”
―그래도 돈이 벌리니까 유치원 계속 한 것 아닌가.
“아이들이 좋아서 했다. 사실 새 유치원 지을 때도 사람들이 요양원 하라고 했다. 그래도 난 노인보다 아이들이 좋아서 유치원 지었다. 내가 유치원 다 폐원하고 요양병원으로 바꾸면 대박 날거다. 한달에 4000만 원씩 임대료 들어올텐데 그게 낫지 않겠나? 그런데 내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유치원 필요한 곳 있고 애들 뛰어노는 모습 보는 게 좋아 한 거다. 그런데 이젠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사실 6개 유치원 중 3곳은 정원이 60~70% 정도다. 경제논리로 따지면 폐원해도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립유치원이 많다. 가만히 있어도 곧 폐원할 사립유치원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 왜 국가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계속 엄포만 놓으면서 우리가 흉악범도 아닌데 때려잡겠다는 얘기만 한다.”
―아이들이 좋아서 유치원 했다면 아이들 생각해서 폐원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폐원 신청하지 않고 모집정지하겠다고 한거다. 당장 문닫겠다는 게 아니지 않나. 다만 앞으로 국가가 하겠다고, 사립유치원은 빠지라고 하니 지금 다니는 아이들까지만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거다. 나중에 아이들 갈데 없지 않게 먼저 얘기해 준 것 뿐이다. 교육자의 최소한의 양심으로 폐원이 아닌 모집정지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교육청과 모집정지 얘기할 때 그랬다. 만약에 정말로 광주 지역 아이들이 수용이 안 되면 당분간 1~2년 더 3세 신입원아 받겠다고 말했다. 걱정인 것은 요즘 같은 저출산에 60억 원이나 들여 누가 유치원을 하겠냐 하는 거다.”
―야속함 느끼는 주변 사립유치원장들 많나?
“내가 아는 많은 원장님들이 내년에 원아모집 안한다고 한다. 그냥 받지 말고 단계적으로 문 닫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이들 없어 유치원으로 돈도 별로 못 버는데 뭐하러 비난까지 받아가며 하나? 감사 받고 회계기준 생기면 잘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기준도 없던 몇 년 전 감사결과 터트리며 적폐집단이라고 하고 있지 않나. 사립유치원이 전체 유치원의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당정청 회의에 사립유치원 원장이나 관계자나 유아교육 교수 한 명이라도 참여시켰나? 아니다. 우리가 물건 파는 사람도 아닌데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받을 각오를 하라니 우리가 정말 흉악범인가보다.”
―유아교육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 보나.
“제일 답답한 게 국가의 획일화다. 누리과정들어오고 나서 뭐가 생긴 줄 아나. 교재가 생겼다. 유치원은 원래 교재가 있으면 안된다. 영역 수업을 하고 그 다음에 교사와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 교구를 이용하고 밖에 나가 뛰어놀아야 하는데 요즘은 책이 생겨버렸다. 예를 들어 숲에 있는 유치원이라고 하면 주 1회 정도 꼭 숲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책으로 숲을 배우고 숲교육이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거다. 공립유치원들은 사고날까봐 현장학습도 안한다. 만약 사고가 생기면 정년도 얼마 남지 않은 교장들은 연금이 없어지는데 아이들을 밖에 나가서 놀라고 하고 싶겠나 싶다. 이번 비리유치원 파문이 가라앉아도 이번에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겠나. 아이들에게 이미 유치원장은 나쁜 사람이 돼 버렸다. 유치원 문을 닫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교육자로서의 명망이 다 깨져버렸다는 거다.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빠져주고 국가가 대신 하겠다니 많은 예산 들여 고용창출하면 좋을 것 같다. 아마 모든 사립유치원장 마음이 같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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