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갖는 감정, 극단적 분출…사회적관리 취약”
경찰 “위험 범죄자 예방 긴급조치 규정도 유명무실”
#. 지난 7월23일 서울 강동구의 한 편의점에서 이 가게 단골손님이던 김모씨(45)는 카운터를 보던 황모씨(51·여)와 언쟁을 벌였다. 몇시간 뒤 다시 돌아온 김씨는 편의점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길은 한 순간에 편의점 전체로 번졌고 당시 가게를 보던 황씨의 남편 최모씨(54)는 중증 화상을 입고 입원했다가 결국 숨졌다. 김씨는 범행 후 1시간쯤 뒤 행인에게 “내가 불을 질렀으니 신고해 달라”며 부탁해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황씨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법원은 김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재판을 지켜보던 피해자 최씨의 유족은 “아직도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라며 허망해 했다.
#.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PC방에서는 손님 김성수(29)는 아르바이트생 신모씨를 흉기로 수십차례 찔러 살해했다. “테이블을 정리해 달라고 했는데, 내게 불친절하게 대했다”는 이유였다. 이제 겨우 스무살, 모델을 꿈꾸던 청년은 그렇게 허무하게 스러졌다.
두 사건 모두 발단은 작은 말싸움이었다. 한 번 마음 속에 인 분노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욱’ 하는 마음을 참지 못한 결과,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우발적 분노에 의한 강력 범죄가 늘어나는 가운데 일선 경찰과 전문가들은 개인적, 사회적 스트레스의 극단적 분출을 제어할 국가 차원의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스트레스 관리 취약…강력·폭력 범죄 3분의 1 ‘욱하는 마음’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일어난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 방화 등) 중 분노와 같이 우발적 동기에 의해 일어난 사건 수는 전체 2만7071건 중 8343건으로 전체의 30.8%를 차지했다. 폭력범죄(상해, 폭행, 협박 등)에서도 우발적인 동기가 전체 38만965건 중 13만7411건으로 전체의 36.1%였다. 강력, 폭력범죄 중 3분의 1가량이 순간적으로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일어난 ‘분노형 범죄’라는 의미다.
분노 조절 장애(습관 및 충동 장애)로 병원을 찾는 사람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분노 조절 장애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5986명으로 집계됐다. 2013년 4934명, 2014년 2962명, 2015년 5390명, 2016년 5920명으로 4년 새 20%넘게 늘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분노형 범죄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며 “분노라는 정서 자체는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정서인데, 이 분노가 가까운 관계에서 뿐 아니라 제3자에게까지 화풀이형 분노가 표출되다보니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는 “현재 우리사회는 스트레스 관리가 취약한 사회”라며 “분노를 긍정적으로 해소할 방법이 없어 언어적, 물리적으로 공격성을 표출하는 경우가 문제인데, 경찰이나 지역 내 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위험성 있는 사람들을 촘촘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경찰 “위험해 보이면 병원 인계할 수 있지만…유명무실한 규정”
일선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가장 먼저 만나는 경찰들도 분노범죄를 막기위해 가족들의 관심과, 국가적 차원의 관리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A경정은 “분노 조절이 어렵다면 병원을 다니며 약물치료를 받는 정도로만 관리해도 범죄에 노출되거나 하지는 않는데 질병관리 시스템이 너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 가족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 줘야하고, 가족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사회복지사 등 국가가 나서서 질병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험해 보이는 범죄자들에 대해서는 경찰이 긴급입원 등 조치를 취할 수 있게 정신보건법에 규정돼 있는 것과 관련해 경찰들은 “유명무실한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정신보건법에 따르면 경찰관은 정신질환으로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을 발견한 경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그 사람에 대한 진단과 보호의 신청을 요청할 수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B경정은 “법률에 규정돼 있긴 하지만 여의치가 않다”며 “위험해 보여서 병원에 데려가도 입원을 거부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B 경정은 “경찰관이 응급입원을 시키기 위해 데려가면 특별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 등 보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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