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한양제일유치원 2층 다락방에는 유아용 방석과 쿠션, 유아용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벽과 천장은 나무를 본뜬 조형물들로 장식돼 있었다. 아이들이 아늑한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든 도서실로 한눈에 봐도 새것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 유치원 이인옥 원장은 “과거 비용 부담에 시설 투자는 엄두조차 못 냈는데 지난해 ‘공영형 유치원’으로 전환하면서 교육환경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현재 2층 도서실 옆은 교재 자료실로 쓰고 있다. 원래 물탱크가 있던 곳인데 교육청 예산을 지원받아 직수 설비를 갖추면서 물탱크를 없앴다.
○ 공영형 전환의 최대 수혜자는 학부모
비리 유치원 사태를 계기로 ‘공영형 유치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영형 유치원은 기존 사립유치원처럼 개인 소유를 인정하면서 정부가 국공립 수준의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하고 그 대신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형태다. 사립유치원이 공영형이 되려면 반드시 법인으로 전환해야 한다. 건립비로만 약 100억 원이 드는 국공립유치원을 신설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예산(연간 5억∼6억 원)으로 사실상 국공립유치원을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국공립유치원 확대 방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재 전국에 공영형 유치원은 서울 4곳, 대구 1곳 등 5곳에 불과하다. 기자가 찾은 한양제일유치원은 지난해 3월 서울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선정한 공영형 유치원 2곳 중 하나다.
그로부터 1년 7개월, 이 유치원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유치원과 시교육청 관계자는 한결같이 “최대 수혜자는 학부모”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 부담금은 공영형 전환 이전 월평균 27만5000원에 달했지만 전환 이후 월 6만5000원으로 4분의 1로 줄었다. 특별활동과 통학차량을 이용하지 않으면 학부모 부담금은 사실상 없다.
○ 입소문 나면서 원아 수 3배로 늘어
원래 중학교 교사였던 이 원장은 대학 교수인 남편과 함께 2001년 유치원을 인수했다. 하지만 저출산 속에 원아 수가 계속 줄었다. 결국 원장 부부가 월급을 반납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운영난을 겪었다. 폐원을 고민하던 2016년 공영형 유치원 사업 소식을 접했다. 일각에서 ‘교육청이 유치원을 빼앗으려는 꼼수’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원장 부부는 공영형 전환을 결정했다.
이 원장의 남편인 박태규 이사장은 “애초 돈을 벌려고 유치원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며 “운영비 걱정 없이 아이들 교육에 집중할 수 있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공영형으로 전환하면서 연간 교육청으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 외에 추가로 인건비와 운영비 명목으로 5억∼6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유치원이 공립 수준으로 좋아졌다는 소문이 나면서 2년 전 18명이던 원아는 현재 58명으로 3배로 늘었다.
그 대신 포기한 것도 많다. 학교법인을 세우고 자가 소유인 유치원 건물과 토지를 법인 명의로 돌렸다. 이와 별도로 수익용 기본재산 1억1000만 원을 내놓아야 했다. 박 이사장은 이 돈을 교수 퇴직금으로 마련했다. 이사회 5명 중 3명을 교육청과 협의해 외부 인사로 채웠다. 또 매주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과 분기별 교육청 평가를 받고 있다.
○ 공영형 확대하려면 제도 현실화해야
교육부는 25일 2021년까지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공영형 유치원의 확대를 발표했다. 다음 달부터 공영형 사립유치원 추가 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문제는 사립유치원들이 얼마나 참여하느냐다.
현재 사립유치원 10곳 중 9곳(87.9%)이 개인 소유인데 이런 유치원들은 법인 전환에 거부감이 크다. 교육부는 법인 전환을 유도하고자 수익용 기본재산 요건을 완화할 방침이지만 설립자인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이라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 법인세 등 각종 세금은 매년 내야 하는 등 걸림돌이 적지 않다.
박 이사장은 “운영난이 점점 가중되는 사립유치원 입장에선 공영형이 최적의 대안”이라며 “다만 이미 전 재산을 재단에 출연해 자금 여력이 없는데도 법인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혼자 부담해야 하는 등 법인 전환의 부담이 큰 만큼 정부가 최소한의 경비 지원을 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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