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용단 덕에 살았다”…수백명 살린 경찰영웅 향한 절절한 추모

  • 뉴스1
  • 입력 2018년 11월 1일 14시 07분


4·3 당시 수백명 목숨 구한 故문형순 서장 흉상 제막

“4·3의 혼란기, 당신의 용단으로 수백명의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제주4·3 생존자 강순주 할아버지(86·서귀포 성산읍)는 1일 제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 문 전 서장을 향한 고마움을 표했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이날 제주4·3 당시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군부의 명령을 ‘부당하다’는 이유로 과감히 거부해 수백명의 성산포와 모슬포 주민을 구한 문 전 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을 가졌다.

이날 추도사에 나선 강 할아버지는 “당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아니었다면 하늘나라에 계신 저희 부모님께서도 편하게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라며 “저희 직계가족 22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 할아버지는 자신을 비롯한 죄없는 사람들을 훈방하면서 문 전 서장이 ‘너희들은 행운아다. 나에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는 “당신의 말씀을 따라 저는 바로 한국전쟁에 해병대로 참전했고 이후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지난 삶을 회고했다.

지난 10월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73주년 경찰의날 문 전 서장을 대신해 ‘영웅증’을 받았다는 그는 “감히 제가 대신 받을 자격이 있나 생각했지만 저의 생명의 은인이기에 혈육이 하나도 없는 당신을 위해 대신 참석해 영광이었다”고 전했다.

강 할아버지는 “문 서장님의 용단으로 저말고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귀중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세상을 떠난 많은 분들이 여기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고마움과 존경을 표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3이 재조명되면서 70년이 지난 지금에야 당신의 업적을 인정받게 됐으니 늦었지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생을 마칠 때까지 고마움을 감직하며 살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또 다른 생존자인 고충언 할아버지(94?서귀포시 대정읍)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휠체어를 탄 채 단상에 올라 문 서장을 향한 고마움을 전했다.

고 할아버지는 “내 살아생전 내 몸이 아무리 불편해도 이번 제막행사만큼은 반드시 참석하겠다고 생각했다”며 감격을 표했다.

이어 이상철 제주지방경찰청장과 안동우 제주도 정무부지사, 김태석 제주도의회 의장 등도 추도사를 낭독하며 문 서장을 향한 경의를 표했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 전 서장은 1949년 서귀포시 모슬포 경찰서장으로 근무하면서 좌익 혐의를 처형 위기에 놓인 주민 100여명을 자수시켜 훈방시켰다.

또 1950년 성산포 경찰서장 재임 중에는 군 당국의 예비검속자 총살명령에 대해 ‘부당하므로 불이행 한다’며 단호히 거부, 200여명의 주민 목숨을 구했다. 당시 그의 노력으로 성산지역 주민의 희생은 8명으로 기록됐다.

문 전 서장은 1953년 9월15일 경찰 퇴직 후 제주시 무근성에서 경찰에게 쌀을 나눠주던 쌀 배급소에서 일을 했으며 대한극장(현대극장의 전신)에서 매표원으로 일하다가 1966년 6월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후손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은 지난 8월 문 전 서장을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선정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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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생존자 강순주 할아버지(86·서귀포 성산읍)는 1일 제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18.11.01/뉴스1 © News1

제주4·3 생존자 강순주 할아버지(86·서귀포 성산읍)는 1일 제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18.11.01/뉴스1 © News1

제주4·3 생존자 고충언 할아버지(94·서귀포시 대정읍)가 1일 제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18.11.01/뉴스1 © News1

제주4·3 생존자 고충언 할아버지(94·서귀포시 대정읍)가 1일 제주지방경찰청 앞에서 열린 고(故) 문형순 경찰서장의 추모흉상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2018.11.01/뉴스1 © News1

문형순 전 성산포 경찰서장(1897~1966). © News1

문형순 전 성산포 경찰서장(1897~1966).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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