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첫 판단을 내림에 따라 같은 혐의로 진행 중인 유사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승헌(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다수 의견으로 징역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날 처음으로 개인의 ‘양심’이 병역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된다고 인정했다. 공권력이 부여하는 의무에 응하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해 형사처벌 등 강제력을 동원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 또는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04년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정하던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정당하다고 인정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선고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부정한 앞선 판례에 대해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모두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31일 기준 대법원에 계류된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227건을 비롯한 수많은 하급심 판결들이 이번 대법원 전합의 판단과 같은 맥락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졌다. 여호와의 증인은 신자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재판 건수를 8월말 기준 1심 423건, 항소심 304건, 상고심 206건 등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바라보는 법원 전반의 틀이 바뀐다고 해도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수감 생활을 했던 이들은 구제받기가 어렵다. 이번 대법원 판단이 기존에 확정된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까닭이다.
다만 정부에서 특별사면을 고려하는 식으로 구제가 이뤄질 여지는 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선고 이후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법원은 병역법 88조1항을 근거로 종교적·정치적 사유 등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을 처벌해왔다.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유로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적 이유는 정당하지 않다고 봤던 까닭이다. 하급심에서도 종전 판례를 인용해 병역법 시행령상 병역 면제가 되는 최소 실형인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는 정형화된 판단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 2004년 5월 서울남부지법 1심을 시작으로 2016년 10월 광주지법에서 2심에서까지 무죄가 선고되는 등 사회와 법원의 분위기가 변했다.
특히 지난 6월28일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를 마련해야 한다고 결정한 영향이 컸다. 이후 사회적 차원에서 대체복무 논의가 본격화, 대법원이 판례에 바뀐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됐다.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가 많은 시각과 쟁점이 얽혀있는 문제인 만큼 파기환송 후 항소심인 창원지법에서 이번 판결과 결론을 달리하거나, 향후 대법원이 시각을 다시 바꿀 가능성이 완전히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의 변화 추세와 다수 하급심의 분위기, 향후 도입될 대체복무제도와의 균형 등을 고려하면 결론이 곧바로 뒤집히기는 어렵다는 견해에 무게가 실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