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용어 교체 요청 폭주…“비양심적 병역 이행, 말이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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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1일 15시 17분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철창에 갇힌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활동가들과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인 2017년 5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철창에 갇힌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종교나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온 가운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1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 씨(34)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본 첫 판단이다.

판결이 나온 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관련 기사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 자체부터 바꿔야한다”(07***), “군대 다녀온 사람은 비양심적 병역의무를 마친 것이냐”(ha***) 등의 댓글이 쏟아졌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의 명칭을 바꿔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자유를 누리려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양심적인데, 거부하는 것이 양심적이냐”며 “국방의 의무를 다한 국민들의 진짜 양심을 극소수의 병역거부자에게 부여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도 이날 YTN 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우리 사회 통념상 ‘양심’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오늘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된다고 하면, 징집에 응하는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라고 오도될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현의 문제이긴 하지만, 저는 ‘종교적 병역거부’라고 생각한다. 또는 종교 외적으로는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나는 종교는 없지만 강한 평화주의를 지향한다’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종교적이거나 양심적 동기에서 나오는 신념에 따라 전쟁이나 무력 행위 등에 참여하는 것과 군 복무에 반대해 병역이나 집총 의무를 거부하는 행동을 말한다. 미국의 ‘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service’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먼저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objection to military service by religious belief)’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이후 1965년 미 연방대법원은 시거(Seeger) 사건에서 종교적 신념이 아니더라도 병역거부가 거부자의 삶에서 ‘진지하고 의미있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것이라면 함께 보호하기로 결정했고, 이때 ‘conscientious objection’라는 용어가 나왔다.

하지만 ‘conscientious’를 ‘양심적’이라고 직역하면서 긍정적 가치평가가 내포됐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마치 병역거부를 미화하고 병역의무 이행을 폄하하는 듯한 혼란을 빚게 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 당시 국민의당 이용호 정책위의장은 “병역 거부자를 양심적이라고 하면, 어감상 병역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절대다수의 국민이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오해될 수 있다”며 “특정 종교의 교리나 개인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라 종교·신념적 병역 거부자로 부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도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기찬수 병무청장에게 “우리 사회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을 유통시키지 않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펼쳐야 한다”며 “군대를 안 간 사람을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고 하면 (군대를 간 사람은)비양심적 의무 이행자가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병무청은 지난달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병무청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 도입 때 합리적 용어 대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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