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에 병역거부 판례변경…‘진정한 양심’ 기준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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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1월 1일 16시 50분


“대체복무제와 양심적 병역거부 형사처벌 문제는 별개”
반대의견은 “진정한 양심 존재 여부 심사 불가능”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앉아 있다. © News1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현역병 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의 상고심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 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앉아 있다. © News1
대법원이 1일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우리 사회의 민감한 과제를 해결할 길을 열었다. 한편으론 양심과 판단의 기준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실제로 대법원이 언급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아 앞으로 이와 관련한 논쟁이 지속될 것같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씨(34)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가운데 8명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병역법 제88조 제1항은 “현역입영 또는 소집통지서(모집에 의한 입영통지서를 포함한다)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호에서는 ‘현역입영은 3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소극적 양심실현’의 모습”이라며 “이들에게 형사처벌 등 제재를 통해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 이행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되거나 양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대체복무제 도입 문제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를 ‘별개’로 봤다는 점이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할 것인지는 대체복무제의 존부와 논리 필연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며 “현재 대체복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거나 향후 도입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체복무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였을 때 제기될 수 있는 병역의무의 형평성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이라고도 했다.

이는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현행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도, 병역거부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조항에 대해선 합헌으로 인정하는 대신 권고의견을 통해 “양심의 진실성이 인정될 경우 법원은 대체복무제 도입 전이라도 입영거부 또는 소집불응 행위에 정당한 사유가 있음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데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읽힌다.

헌재가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처벌받는 것이고, 처벌조항에는 문제가 없다’는 데 방점을 둔 반면, 대법원은 ‘대체복무제의 존부와 상관없이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제시한 것이다.

대법원 전합이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해 14년 만에 판례를 변경하는 등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았지만 향후 적지 않은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대법원이 제시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의 기준으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은 그 신념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즉 Δ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신념의 영향력 아래 있어야 하고 Δ신념이 반드시 고정불변은 아니지만 분명한 실체를 가진 것으로서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Δ신념에 거짓이 없고,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 사건에서 이를 판단하기 위해선 가정환경과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피고인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양심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소명할만한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하며, 검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다수의견은 밝혔다.

그러나 반대의견을 냈던 4명의 대법관들은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 여부를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인다”며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사정들은 형사소송법이 추구하는 실체적 진실 발견에 부합하도록 충분하고 완전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희대·박상옥 대법관은 보충의견에서 “다수의견이 제시하고 있는 요소들은 특정 종교의 독실한 신도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 있을 뿐이지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를 가려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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